[컬트소설] 통곡의 벽 (3)
기사입력 1999년 05월 11일 14시 24분
집 주변엔 숲이 있었고, 앞 100m 쯤엔 도로가 나 있었다.
단층 양옥에 정원이 있고 거기에 채소를 심어 먹을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글쓰는 직업상 외진 곳에 아늑한 주택을 구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딸 아이는 아직 학교 다닐 나이가 안됐지만, 근방에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 걱정이 없었다.
아내도 내심 행복한지 이사오고 늘상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골방 하나를 내 서재로 하고 그 곳에 책꽂이와 책상을 놓았다.
저녁을 먹고 어수룩하게 창밖으로 노을이 지면 나는 그 책상에 놓여있는 노트북의 뚜껑을 열고 글을 써 나가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면 서서히 노을은 사라지고 어둠이 방안으로 밀려오면 나는 스탠드를 켜고 액정 화면에 시야를 고정시킨다.
글이 잘 안 풀려나갈 때는 잠시 의자에서 일어나 서성거리기도 하고 책꽂이에 꽂혀있는, 내가 펴낸 책들을 꺼내 읽어보기도 한다.
그러다가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다 보면 문득 방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대개가 아내인데, 과자나 따뜻한 홍차 한 잔을 쟁반에 올려 가져온다.
아내는 그것을 책상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는 엉덩이를 책상 모서리 근처에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물끄러미 액정 화면을 처다보며 배시시 나에게 웃어보인다. 그만 자자는 아내의 신호는 늘상 그렇다.
때론 내 양쪽 어깨로 팔을 늘어뜨리고 고른 숨을 내 귓가에 쉬면서 "그만 자요"하기도 한다.
아내의 감촉 좋고 탄력있는 가슴이 내 등에 보드랍게 닿는 느낌을 나는 좋아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집에서 전원의 꿈과도 같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부터인가.
딸 아이가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늘상, 박제와 관련이 있었다.
거실에 있는 조그만 날짐승들을 보면서 딸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딸 아이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듣는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때 그 상황에서의 딸아이의 집중력은 너무도 대단하여 나나 내 아내가 불러도 전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딸 아이는 그저 울면서 알아듣기 힘든 말만 계속했다.
"아가가 울어요. 아가가… 흑흑… 엄마, 슬퍼요."
딸 아이가 쳐다보고 있는 곳을 우리 부부도 보지만 거기에는 늘상 박제 뿐이고 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박제의 플라스틱으로 된 눈동자가 우리 셋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종합병원 정신과 의사인 친구 녀석에게 딸 아이를 보였다.
그러나 그 친구는 찬찬히 딸 아이를 진찰해보고는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어릴 때 일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하면서 보약이나 한 재 먹이라고 했다.
그러나 딸 아이의 환각과 환청은 사라지지 않았다. [계속]
글·이정우(하이텔ID:Vand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