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서세원- '죄송해요'말 한마디의 위력
기사입력 1999년 04월 21일 14시 48분
봄비가 많이 내리는 어느날이었다.
마침, KBS 2TV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택시 드라이버'를 촬영하고 있었는데, 몸이 으실으실 추워 차 안에 히타를 켜 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건강하고 싱싱해 보이는 팔뚝을 훤히 드러낸 반팔 티셔츠를 입은 한 젊은 여자가 택시문을 벌컥 열고 타는 게 아닌가.
난 잠시 차 안을 가득 매운 젊은 에너지 앞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 아가씨는 언니와 함께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난 상투적인 질문으로 돈 많이 버냐고 물었는데, 그 아가씨의 대답은 의외였다.
"내 일을 하니까 즐거워요!"
난 커피숍에서 얼마를 버느냐는 결과를 물었는데 그녀는 소신있게 과정의 즐거움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또 한번 젊음에 움찔하고 있는데,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얘기들은 주옥같았다.
"중．고등학교때는 친구들과 몰래 담배와 술도 즐기고, 엄마한테 욕먹는게 싫어서 남자친구들과 매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어요"
그녀는 반항심리가 발동해 부모에게 소리도 질렀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파란만장한 사춘기를 지나고 어느날! 그녀 스스로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 노력했단다.
예전엔 엄마가 왜 이렇게 늦게 들어오냐고 물으시면, 내 일이니까 상관하지 말라며 소릴 치던 그녀의 태도는 그날 이후로 180도 바뀌었다고 한다.
엄마가 늦게 들어오느냐며 핀잔을 줄때도 그녀는 "죄송해요"라고 고분고분 대답했단다.
그녀는 `죄송해요'란 말 한마디에 실린 힘이 그 뒤의 모든 상황을 종식시킬만큼 어마어마한 것이란 걸 그제서야 깨닫게된 것이다.
말 한마디는 중요하다.
길게 늘어놓는 사설보다 한 줄의 시가 더 설득력있고, 감동을 주는 것과 똑같다.
"죄송해요"란 말 한마디.
그녀가 제 2의 인생을 살게 된 후, 알게된 첫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태어나 얼마가 지났을때, 그녀가 처음으로 말했을 "아빠, 엄마"라는 단어처럼 말이다.
그렇게 그녀를 목적지까지 태워다주고, 택시비는 안받는다고 말하자 그녀는 머뭇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 죄송해요!"
난 잠시 그녀가 왜 그 말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봄비 내리는 밤거리를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기특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방송MC]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