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운명 (2)
기사입력 1999년 04월 13일 15시 14분
나는 공사장 2층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공사장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이봐, 자네 정신을 어디다 두고 일하는 거야? 죽고싶어서 환장했어? 엉?"
현장 감독이 달려왔다.
"… 이봐, 안 다쳤어? 어디 좀 보자구."
감독은 내게 다가와 몸 여기저기를 두드리고 누르며 법석을 떨었다.
"아쭈…. 자네 이 일 한지 얼마 안됐지? 왜 이렇게 사내 녀석이 고와?"
그는 나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는 듯 들어올렸다. 그런데….
내 얼굴을 본 순간 `헉！' 하는 숨소리만을 남긴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갔다. 그 현장 감독은…?
나는 모르겠다. 왜 그 감독이 나를 보고 놀랐는 지….
못 볼 사람을 본 것처럼, 눈이 튀어나올 듯이….
그 뒤로 사람들은 나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게 그 현장감독의 지시였든지 아니었든지, 나는 상관없다.
내가 그에게 껄끄러운 사람이라면 떠나주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하지만 곧 후회를 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 생각이 다시 떠오르자, 나는 곧장 그 공사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다른 현장으로 갔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이름과 얼굴만을 알고 있었다. 다른 그 무엇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나의 인생을 찾아줄 전부였기에 그렇게 떠돌았다. 그를 찾아서, 공사장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청역 근처의 대형 공사장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는 말쑥한 차림으로 공사장에서 걸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눈치를 채이고 말았다.
그가 뛰기 시작했다. 너무나 마음이 다급한 나머지 나는 주변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여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그 여자는 나를 보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운명처럼 만난 그녀가 바로… 민희씨다.
# # #
민희씨의 집 내부는 매우 아늑했다.
마치 언젠가 와 본…, 아！ 와 봤다고 했다. 민희씨의 말에 의하면….
어쩐지 너무나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무슨 일인지,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나를 쥐어짜듯이 둘러싸고 있는 두툼한 이불. 그 이불에서는 알 수 없는 공포가 느껴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나의 몸은 차갑게 식어만 갔다.
흐느끼는 여자의 울음소리. 크게 쿵쾅거리는 시끄러운 외국 노래들. 암흑의 세계.
나는 매일 밤 이런 꿈을 꾼다. 매일 똑같은…, 그리고 점점 더 선명해지는….
[계속]
글·이춘영(Cece)/하이텔/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