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강우석-'사람을 교과서 삼아라'
기사입력 1999년 03월 22일 14시 31분
고난도의 수학문제를 풀어내면서, 아주 쉬운 문제를 못푸는 학생들이 있다.
교과서는 안보고, 참고서만 파는 학생들이다.
하지만 어려운 문제 2개 맞추고, 쉬운 문제 3개를 틀린다면 어찌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있겠는가.
수석 합격자들 인터뷰에 "교과서에 충실했다"는 뻔한 대답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지 모른다.
영화에는 `국정 교과서'가 없다.
조감독이나 연출부중에는 연극영화과 전공 출신들이 많은데 "대학에서 4년간 배운건 무효이고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란 말을 종종 한다.
확실히 영화와 수학은 다르다.
수학은 문제가 있으면 같은 답이 나오지만, 영화는 같은 시나리오를 주더라도 연출자에 따라 다른 영화가 나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영화의 묘미다.
영화의 연출－제작－배급－기획을 `수학공식'에 대입하면 똑같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헷갈린다. 어느것이 옳은 방법일까.
나는 이처럼 갈피를 잡지못하는 영화 입문자들에게 "사람을 교과서로 삼아라"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화는 `현실 예술'이다.
또 영화는 머리와 가슴으로 작업하는 분야다.
그런 면에서 사람을 교과서로 삼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된다.
나는 영화일을 하면서 찰리 채플린을 교과서로 삼았다.
만일 내가 교과서를 보다가 지겹고 졸려, 참고서에 매달리기 시작했다면 난 죽도밥도 안됐을 것이다.
청룡영화상에서 나는 `투캅스'와 `투캅스 2'로 한국영화최고흥행상을 연속 받았지만 감독상은 받지 못했다.
그래도 난 만족한다.
내가 `투캅스'를 만들면서 최우수작품상까지 욕심냈다면 나는 아마 흥행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주위에서 교과서보다 참고서에 충실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감독이 되려면 감독을 교과서로 삼아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감독이 되기 위해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연출경험을 쌓으라"고 충고한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이정향 감독은 자작 시나리오로 데뷔했지만 나는 그가 시나리오 한편 잘 써서 좋은 감독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감독은 오랫동안 충무로 현장에서 연출부로 뛰었고, 그런 경험속에서 "나는 이런 영화를 만들 것이다"란 생각을 발전시켜 나갔을 것이다.
지금까지 "교과서에 충실하라"고 외치다보니까 문득 한가지를 빠트렸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들이 교과서가 되도록 노력합시다"란 말을 안하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이것은 영화처럼 국정교과서가 없는, 많은 분야에 해당된다.
신문을 보다보면 정치도 영화처럼 교과서가 없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철새 정치인들은 결코 후배들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건 시간이 지나서 평가될 문제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누구처럼 되기 위해 정치인이됐다"거나 "나는 누구 작품을 보고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이 나온다면 `누구'는 분명 교과서같은 인생을 산 걸거다.
[영화감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