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소설] 폴라리스 랩소디(17)
기사입력 1999년 03월 19일 16시 17분
오닉스는 손목에 채찍이 감긴 채 손을 위로 들어 올린 후 노예장을 앞으로 확 끌어당겼다.
그리고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노예장의 정수리를 향해, 세심하다 싶을 정도로 침착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머리가 쪼개진 노예장의 몸이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오닉스는 불쾌하다는 듯이 노예장의 시체를 내려다 보다가 손을 들어 올려 손짓을 보냈다.
'모두 노를 놓고 엎드려라.' 노예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오닉스를 기쁘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오닉스는 노를 팽개치고 화다닥 머리를 숙이는 노예들을 무표정한 눈으로 바라 보았기 때문이다.
노가 멈춰지면서 레브스호는 이제 완전히 움직임이 봉쇄되었다. 그런 레보스호를 향해 그랜드파더호와 물수리호, 바다사자호가 주위를 포위해 들어왔다.
다른 배들을 향해 달려간 질풍호와 페가서스호는 포신이 녹아버릴 정도로 포격을 가해 두 척의 카밀카르 배를 멀리 쫓아냈다.
레보스호의 갑판이 쓰러진 슈마허는 다 끝장 났다는 심정이었다. 배는 포위됐고, 해적선에서는 해적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고 있었다.
노는 완전히 정지했고 해적들은 돛을 찢어버렸다. 그러나 그 모든 총체적 절망 속에서도, 슈마허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바로 옆에 앉아서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는 라이온의 존재였다.
"이봐, 슈마허라고 했지. 탁 까놓고 대화 한번 해보자. 애인 있나? 말해봐. 부끄러운거야? 물론 여자겠지? 으하하!
나는 농담을 너무 잘한단 말이야. 어헉? 대답을 안하다니. 오 혹시 애인이 남자인가? 음음 다름 사람의 성생활에 대해 참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라이온은 아주 편한 자세로 앉아서, 이런 돼먹지 않은 말을 끊임없이 주절거리며 슈마허를 반쯤 돌아버리게 만드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래서 슈마허는 어깨가 끊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의 머리 속에는 라이온이라 불리는 이 미친 녀석의 입을 뭉개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무럭무럭 피어 올랐다.
슈마허는 간신히 입술을 움직였다. "너 …미쳤지?" "응? 우리가 언제 만났던가?" "뭐야?" "그럼 내가 미친 걸 어떠헤 알고 있지?"
슈마허는 자신이 왜 아직도 졸도하지 않을 정도의 굵은 신경을 가지고 있는지 원망했다. 졸도했다면 이 미친놈의 종알거림을 듣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아, 아니다. 이놈은 내가 졸도하면 깨워놓고 중얼거릴 놈이다.
라이온은 신기하기 그지 없다는 투로 슈마허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신기한데. 아, 자네 점도 칠 줄 아나? 잘됐군! 죽기 전에 내 올해 운수가 어떨지 좀 봐주지 않겠어? 나도 자네 운수르 봐주겠어.
뭐, 바보라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자네 운수는 볼장 다 봤지. 배는 격침되고 부하는 모두 잃고 자네는 …, 아니 굉장한 미녀잖아?"
슈마허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라이온을 바라보았다. 이 놈이 무슨 말을 하는거야? 그러나 라이온의 눈은 그가 아니라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불안함이 슈마허를 엄습했다. 슈마허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돌렸다.
"와, 왕녀님! 이 발칙한 놈!"
오닉스가 겨드랑이에 율리아나 왕녀를 끼운 채 승강구 쪽에서 나타났다. 율리아나 왕녀는 파랗게 질려 감히 반항을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짐짝처럼 취급당하는 것을 감수하고 있었다.
라이온은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왕녀? 왕녀라니. 아…. 카밀카르의 그 삼왕녀인가? 필마온 기사단에 시집 간다는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