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사랑방] '어,우승 트로피가 사라졌네!'
기사입력 1999년 03월 15일 14시 04분
◇5개월여의 프로농구 98∼99시즌 정규리그가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세돌째를 맞은 올시즌 프로농구는 IMF라는 악재에도 불구, 서장훈 현주엽 등 거물루키들의 데뷔와 흥미진진한 순위경쟁 덕분에 관중동원에서는 일단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판정시비는 여전히 계속됐고 이같은 불신의 벽은 나산 김병천이 심판에게 주먹을 휘두려다가 중징계를 받는 불상사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심판들의 권위를 세우는 작업과 함께 자질을 향상시키는 방안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정규리그 최대 관심사는 역시 동양의 연패（連敗） 행진이었습니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동양의 32연패는 차라리 부끄러운 한국프로농구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외국인 선수가 야반도주를 해도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만거지요.
여기에다 심각한 검토조차 없이 주전급 선수들을 대거 군입대시켰던 구단의 무책임한 행정도 프로농구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범이었습니다.
◇서장훈 현주엽 등 거물 루키들이 대거 입단한 SK의 플레이오프 탈락은 이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문가들도 "SK는 적어도 4강 전력"이라고 평가했는데 어이없이 무너진 것이지요.
지난해 8월 트라이아웃 당시 숱한 화제를 뿌렸던 러틀랜드가 부진을 면치 못한데다 서장훈 현주엽마저 아시안게임 때문에 팀을 비웠던 게 SK로선 치명적이었던 같습니다.
◇지난 13일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지으며 한껏 기분을 내던 현대 선수들이 한동안 우승 트로피를 찾느라 부산을 떨어야 했습니다.
기념촬영 도중 트로피가 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선수들은 부랴부랴 트로피를 수배했지만 온데간데 없었던 겁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이날 현장에서 약식 시상식을 가진 KBL（한국농구연맹）측이 상경을 서두르면서 트로피를 승용차에 실어버린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트로피는 17일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현대에 정식으로 전달될 예정인데 KBL측이 서둘러 챙기는 통에 선수들은 "흥이 식어버렸다"고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동양 김백호 운영팀장의 미담이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팀장은 지난 13일 대전서 벌어진 현대전 하프타임에 잠시 체육관 밖에 나갔다가 한 어린이로부터 "전반 스코어가 어떻게 됐느냐"는 질문을 받았답니다.
스코어를 말해준 김팀장은 "왜 경기장에 들어가지 않느냐"고 물었고, 그 아이가 "돈이 없어서…"라고 얼버무리자 지갑에서 4천원을 꺼내줬다는군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부리나케 매표소로 달려간 그 어린이에겐 아마 평생 잊지못할 경기가 됐을 겁니다.
◇나래 신기성이 선거가 끝난 뒤에도 `명연설'을 했습니다.
기자단 신인왕 투표 다음날인 지난 13일 대우전에서 트리플더블을 기록한겁니다.
이때만 해도 신인왕 당선자 발표전이라 최명룡 감독은 "그런건 며칠 더 빨리 했어야지"라며 꿀밤을 한대 먹였고 구단 직원들도 아쉬운 마음에 다들 핀잔을 줬죠.
그런데 이틀후인 15일 신기성이 신인왕으로 발표되자 나래 직원들은 "선거가 끝나고 난 다음날까지 유세를 했으니 당선이 안될 수 있느냐"며 기뻐하더군요.
◇연세대 최희암 감독이 14일 대우－현대전이 벌어진 부천실내체육관에 나타나 주위를 긴장시켰습니다.
최근 각 구단의 사령탑 1순위 후보로 꼽힌 최감독이 프로코트에 모습을 드러내자 의혹을 증폭시킨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최감독은 16일의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연세대 졸업생 4명의 취업부탁을 위해 체육관을 찾았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최감독은 연세대 동문인 대우 유재학 감독과 현대 신선우 감독에게 `후배 사랑'을 특별히 주문했다는 후문입니다.
◇나래가 70년대에나 유행했던 `분식 장려운동'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나래 직원들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자장면이나 라면 등 국수 종류를 먹는답니다.
국수를 먹으면 경기가 잘 풀린다는 징크스 때문이죠.
그 때문에 대구는 라면, 부산 창원은 자장면 등 지방별로 경기장 부근에 단골집도 확보해 뒀다는데요.
나래 조용근 단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순위가 이미 다 결정나 승패에 의미가 없었던 14일 LG전때도 창원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집으로 직행해 자장면을 한그릇씩 먹고서야 안심하고 체육관으로 들어가더군요.
[정리＝류성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