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칼럼] '컴퓨토피아' 유감
기사입력 1999년 03월 02일 15시 24분
미국에서 앨 고어부통령이 정보고속도로운동을 목청껏 외칠 때였다.
그러니까 7, 8년전이다.
`정보고속도로'
보통 미국인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한 지방 TV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몰래 카메라형식으로 물어보았다.
"정보고속도로가 어디 있지요?"라는 질문을 받은 10명중 8명은 지도를 펼치곤 "글쎄 지도에는 안 나와있는데요. 미안합니다"라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한명은 당당하게 동네 진입고속도로를 가르키며 "저겁니다"하고 말했고 나머지 한명 정도는 "듣긴 들었는데 다른 주에 있는 고속도로같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10명에 단 1명도 몰랐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이 세계를 정복했고 우리의 삶은 컴퓨터없이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아차!' 싶은 것이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모든 것을 컴퓨터앞에서 해결한다.
마치 산드라블록이 컴퓨터 여도사로 나온 영화처럼 먹거리부터 속옷까지 모조리 컴퓨터로 해결한다.
인간과의 접촉과 생생한 자기 체험이 서서히 단절되는 것이다.
인터넷의 전도사 네그로폰테는 "인터넷이 지배하는 세상은 모든 정보가 공유되는 평등이 실현된 이상향"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폭로'를 쓴 작가 마이클 클라이튼은 "전세계가 인터넷이라는 단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됨으로써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가장 큰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실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한 언론계 선배가 후배기자에게 취재지시를 내리면 진종일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며 상당량의 자료를 뽑고 그 자료로 기사를 쓰는 것은 이미 일반화 되었다.
결국 죽은 자료, 아무리 업데이트되었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뜻에 맹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 옛날 볼펜한자루를 들고 무조건 현장에 가서 되던 안되던 그 뜨거운 가슴으로 부딪히던 젊음은 어디 갔느냐고 한탄한다.
체험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지식이자 정보이다.
인터넷 독재에 반기를 들 정보의 민주화운동을 벌일 투사는 어디 있는가?
체온을 통한 섹스가 최고이듯 발로 뛰는 체험이야말로 가장 귀중한 정보이자 지식이기 때문이다.
[전여옥(방송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