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소설] 다빈치의 눈물(6)
기사입력 1999년 02월 25일 15시 08분
영신에게 팔을 잡힌 여자는 한참을 버둥대다가 결국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대신 두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번째는 선글라스를 벗는 것은 여기선 안되고…, 당신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그 곳에서 벗는 거예요.
그리고 두번째 조건은 당신이 내 눈을 보고 난 후에 말하겠어요."
힘겹게 승낙을 얻어낸 영신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시다. 지금 당장 갑시다."
들뜬 표정으로 손을 잡아끄는 영신을 보며 여자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당신은…, 분명히 내 눈을 보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거예요."
그녀의 중얼거림에 잠시 주춤하던 영신은 이내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그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면 나는 더 이상 살아있을 필요조차도 없으니까…."
하얀 형광등이 반짝이는 작업실에서 한 손에 붓을 쥔 영신은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앞에선 여자를 쳐다봤다.
이제 어쩌면 마지막이 될 희망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묘하게 뒤섞이며 영신의 가슴은 사정없이 뛰고 있었다.
드디어 앞에선 여자가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자, 영신은 크게 한번 숨을 들이키고는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순간, 처음에는 영신의 눈에 불신과 경악이 뒤섞인 시선이 가득 차 올랐고 그 시선은 어느새 서서히 공포감에 가까운 시선으로 변해갔다.
그리곤 두 눈을 부릅뜨던 영신은 별안간 발광하듯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아 안돼. …어떻게 이럴 수가…. 이건 …아니야, 믿을 수가 없어！ 왜, 하필이면…, 끝났어！ 모든 게 끝이야！"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쥐어뜯으며 발악하던 영신은 결국 서서히 그 자리에 무너지듯 쓰러져갔다.
뜻밖에도 선글라스를 벗은 여자의 눈은 사시였다.
어떻게 보면 단지 우스꽝스럽게 안쪽으로 모여있는 여자의 두 검은 눈동자는 그녀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얼굴과 합쳐져서 이 세상엔 있을 수 없을 듯한 부조화와 괴기감을 풍겼고, 그 모습이 영신에게는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 본다면 그저 이맛살을 한번 찌푸리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영신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지금까지 영신이 혼신을 다해 그린 여인이 그 얼굴에 걸맞은 눈을 그려주지 못해 지금껏 미완성인 채 버려지고 있었고…, 이제 막 절망과 포기 속에 사라져버릴 영신의 그림과 삶에 한줄기 혜성처럼 나타난 그림 속의 여인과 똑같이 생긴 선글라스의 여인은 영신에게는 완성을 위한 영감을 전해줄 마지막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믿어지지 않는 행운에 흥분하고 있던 영신의 눈에 보인 선글라스 여자의 일그러진 눈동자와 완벽하게 아름다운 얼굴의 부조화는 단 한순간에 영신의 영감과 의지와 삶의 희망을 박살내며 그 모습은 흡사 추악하고 처절한 지옥도 속의 피에 굶주린 악마의 모습보다 더 큰 공포로 영신에게 다가온 것이다.
차디찬 바닥에 쓰러진 영신은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벌레처럼 몸을 꿈틀거리며 어느새 선글라스를 다시 쓴 여자를 올려봤다.
그런데 그 순간. 여자의 얼굴이 밀랍처럼 딱딱하게 굳어지며 핏빛 루즈를 칠한 입술에서 한기가 풍기는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기묘하게 뒤섞인 싸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고 했는데….
역시 인간들은 어리석어. 이제 내 조건을 말하지.
앞으로 3일 안에 내 초상화에 눈을 그려넣어. 어떤 모습이든지 상관은 없지만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어야 해. "[계속]
글·송강민
/하이텔 악몽따라&무진교(go sg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