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씨] 서정적인 감성 자극 새시집 출간
기사입력 1999년 02월 09일 14시 57분
`어느날, 70년 전의 어느 여름저녁입니다. 어머니가 장독간에 간장을 뜨러 갑니다. 어머니의 치마끝을 붙잡고 나도 아장아장 걸어갑니다.//…//놀로 물든 하늘이 어머니의 볼을 적십니다. 어머니의 볼도 놀빛으로 볼그스름 물들어 갑니다. 나는 또 그런 어머니의 볼을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하염없이 들여다봅니다.…'(`놀' 중에서)
`꽃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원로시인 김춘수씨(78)가 새 시집 `의자와 계단'(문학세계사)을 펴냈다.
`편안한 자세'로, `그동안 몸에 밴 것들이 자연스레 드러나도록 그 때 그 때 쓰고싶은 대로' 쓴 50여 편의 시가 담겨 있다. 스스로 `만유사생첩(萬有寫生帖)'이라고 규정하는 시집이다.
그만큼 그동안의 시세계와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의미시'로 불리는, 극한까지 밀고갔던 언어실험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서정성 넘치는 시로 감성을 잔잔하게 자극한다.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김춘수의 시란 것을 알아채지 못할 작품들이 많다.
독자들도 마음의 허리띠를 풀고 예전보다 훨씬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노시인은 편안한 `의자'에 앉아있지 않고, 가파른 언어의 `계단'을 오르며, 끊임없이 새로운 시세계를 펼쳐간다. 늘 변화하는,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준다.
`시인이 된다는 것', `자유, 꿈' 등 두 편의 산문도 함께 실려 있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