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우울한 시대…아버지들의 초상화
기사입력 1999년 02월 09일 14시 46분
가장이 기침하면 가정은 몸살난다. 낙엽처럼 거리를 떠도는, 실직 가장들의 어깨가 시리다. 어려운 시대는 언제쯤 끝나려나. 눈빛이 허허롭다.
시절 탓이리라. 아버지를 화두로 한 작품들에 오래 눈길이 머문다. 아버지에 관한, 아버지를 위한 신작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최근에만 시인 신달자의 `아버지의 빛'(문학세계사), 소설가 조경란의 `가족의 기원'(민음사), 대만작가 왕원싱의 `아버지를 찾습니다'(강) 등이 출간됐다.
가족 특히 아버지의 빈 자리를 더듬는 작품들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그들의 어두운 모습을 그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아버지라는 존재의 무게와 소중함을 되새긴다.
6년만에 새 시집을 선보인 신씨는 지난 97년 타계한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해낸다. 시인도 적지 않은 나이건만, 부친과의 사별은 어쩔 수 없이 아프다. 아버지에 관한 시가 절반을 넘는다.
`아버지를 땅에 묻었다/하늘이던 아버지가 땅이 되었다//땅은 나의 아버지//…//땅에 묻었지만/하늘에서 만나리'(`아버지의 빛1' 중). 관념의 세계에서 땅으로, 여성적 감성에서 현실로 눈을 돌린 것도 시세계의 변화다. 모두 아버지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경란과 왕원싱의 장편소설은 가장인 아버지가 무너질 때, 한 가정이 어떻게 되는 지 보여준다.
조경란의 `가족의 기원'은 가장의 파산과 그로 인한 가족의 와해를 그린다.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상징이다.
아버지의 몰락이 도화선. 어머니는 눈물과 한탄으로 세월을 보내고, 막내동생은 유학을 꿈꾸고, 다른 동생은 가출한다. 집은 경매에 넘어가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빚더미에 올라앉은 집안에서 구하기 위해 주인공 유정원은 집을 떠난다.
작가는 가족이라는 제도에 질문을 던진다. 가족이 해체된 곳에서 새로운 인간적 유대관계를 탐색한다.
왕원싱의 `아버지를 찾습니다'는 아버지와 아들이란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다. 공직 은퇴후 어느 날 문득 집을 나가버린 늙은 아버지, 그 아버지를 찾는 석 달 남짓한 기간의 이야기다. 공간만 바꾼다면, 한국인들의 자화상으로도 읽을 수 있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