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씨] 수채화처럼 투명한 어른동화
기사입력 1999년 01월 03일 14시 30분
전남 화순군 운주사. 대웅전 처마 끝에 풍경이 매달려 있다. 그런데, 물고기가 보이지 않는다. 빈 쇠줄만 바람에 흔들린다. 물고기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왜 떠났을까.
시인은 궁금했다. 그래서 동화 한 편을 썼다. 정호승씨(49). 어른이 읽는, 수채촤같은 동화 `연인'(열림원)을 펴냈다. 우리들 가슴 어딘가에 감추어져 있는 사랑의 풍경소리를 찾아가는 푸른툭눈의 이야기다.
궁핍한 시대일 수록 따뜻한 사랑이 더 그리운 법이다. IMF한파와 겨울바람을 뚫고 시작된 99년. `연인'은 삶에 지친 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이야기한다.
스토리는 단순하다. 비어(飛語)가 되어 세상을 날아다닌 푸른툭눈이 온갖 시련을 겪은 끝에 풍경으로서의 삶과 진정한 사랑을 다시 찾는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여기'에서 삶의 의미를 찾자는, 현실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푸른툭눈은 운주사 풍경. 연인 검은툭눈과의 사랑, 매달려 사는 자신의 삶에 회의를 품는다. 어느 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새끼제비를 구하기 위해 몸을 날린 것을 계기로 푸른툭눈은 비어(飛語)가 된다.
푸른툭눈은 맨 처음 바다를 찾아간다. 도중에 매에게 흰물떼새를 잃고 죽음을 알게 된다. 붕어찜 식당 주인에게 잡혀 혼이 나기도 하고, 저수지에서 낚시바늘에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삶을 긍정하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잿빛 비둘기와 사랑에 빠지지만, 새가 아니라는 이유로 버림받는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푸른툭눈은 와불을 찾아간다. 와불은 `이 세상에는 고통없는 삶도, 상처없는 아름다움도 없다'고 위로한다.
푸른툭눈은 자신의 본질이 어디까지나 풍경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매달려 있던 처마끝으로 돌아가 검은툭눈의 사랑을 확인한다.
정씨는 "이 동화를 쓰면서 왜 내 삶에 바람이 부는지, 내 존재의 위치가 어디인지 다시 깨달았다"면서 "나 자신도 용서하게 됐다"고 말한다.
소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날개 달린 물고기, 인간의 얼굴을 한 새 등 종교적이고 신비로운 박항률 화백의 그림은 읽는 맛을 더해준다.
[임정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