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훈기ML산책] 등판날의 선발들 모습
기사입력 1998년 05월 08일 14시 39분
첫 출장지인 피츠버그만해도 계속 비가 내리고 서늘한 기온이었고 애틀랜타에서는 기분좋은 봄 날씨였는데 마이애미는 5월 초순인데도 끈끈한 더위가 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박찬호가 벌써 시즌 8번째 선발 등판을 한다.
자신이 출전하는 날이면 박찬호는 경기전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대범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정신 집중과 경기에 대한 구상을 하는데 그 누구와의 대화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메이저리그에서는 선발 투수에게 가급적 말을 건네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돼있다.
박찬호뿐 아니라 다른 투수들도 경기전 그 누구와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린다.
등판 직전의 모습들도 각각 달라 흥미롭다.
박찬호는 작년만해도 전자 게임을 열심히 하더니 올해는 자신의 라커 앞에 앉아 책이나 팬레터를 읽으면서 마음을 가다듬다.
노모 히데오의 경우는 헤드폰을 끼고 일본 가요를 들으며 일본 주간지를 읽는다.
노장 라몬 마르티네스는 홈 경기의 경우 비디오실에서 상대 타자들의 테이프를 보기도하고, 원정 경기에서는 같은 남미계 선수들과 앉아 그들이 떠들고 웃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미소를 짓는다.
역시 말은 거의 하지 않는다.
평소 조용한 이스마엘 발데스는 등판전에는 활달하게 떠들며 멕시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흥얼거리기도 하는 등 전혀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사상 최고의 복서였던 무하마드 알리는 경기전 그토록 떠벌이던 것은 공포를 떨쳐 버리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새가슴'으로 알려진 발데스 역시 긴장감에서 탈피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5번 선발 대런 드라이포트는 아주 무신경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동료들과 이야기하고, 기자들을 만나도 툭 치고 안부를 묻는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구원 투수를 몇년 하다보니 등판에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 본인의 말이다.
그러나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겉으로는 무엇을 하든지 마음속으로는 눈앞에 다가온 경기의 승리를 위해 온 신경을 집중시키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점이다.
고대 로마 시절 콜롯세움으로 나가기 직전의 검투사들이 등판전 박찬호의 마음같았을까.
E-mail hkmin＠earthlink.net
[마이애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