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78)중세유럽 남편들
기사입력 1998년 05월 03일 15시 08분
르네상스 시대 유럽의 남편들은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툭하면 아내한테 얻어터졌다. 아내한테 구타당한 남편은 법에 따라 벌을 받기도 했다. 앞뒤로 따귀 맞는, 이중고를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1594년, 독일 하르츠 강변의 블랑켄부르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제정된 법규를 보자. 법규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내가 남편을 구박하고 구타했을 경우 벌을 내린다'는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쥐어뜯는다거나 때린다든가 했을 때, 아내는 정상을 참작하여 벌금 또는 징역에 처해진다. 혹은 아내에게 재산이 있을 경우 시청의 관리에게 모직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로부터 쥐어뜯기고 매맞고 욕먹을 정도로 남편이 연약하고 또 그런 일에 분개하여 상부에 고소해야 함에도 불구, 그렇게 행동하지 않은 사실이 발각됐을 경우에는 남편은 시청의 담당 관리 두 사람에게 모직물을 바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남편은 징역이나 자유 재량에 따라 처벌되며 자기 집 지붕을 벗겨내지 않으면 안된다.'
아내게게 얻어터진 것도 억울한데, 맞은 사실을 관청에 알리지 않으면 현금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직물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또 하나의 문서를 보자. 베스트팔렌의 옛 판례인 벵커의 이교도법에 쓰여있는 구절이다. 이 문서는 `쫓겨난 남편에게는 벌주（罰酒）를 내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내 때문에 집에서 쫓겨난 남편은 지붕 위에 사다리를 걸고 올라가 지붕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 집에는 말뚝을 박는다.
그리고 남편은 금화（굴덴） 한닢에 상당하는 벌금을 내고, 그 돈으로 두 명의 이웃 사람과 함께 술을 마셔야 한다. 남편은 만취할 때까지 계속 술잔을 비우지 않으면 안된다.'
당시의 사회는 이른바 `마누라 천하'라고 불렸다. 어찌나 아내들이 무서웠는지 풍자 화가들은 악처들을 소재로 많은 그림을 그렸다.
풍자화의 내용은 하나같이 남편을 바보 취급하는 것들이었다. 아내의 명령에 따라 멍텅구리처럼 피리를 불면서 춤을 추는 남편, 남편의 등에 올라타곤 남편을 말처럼 부리는 아내 등등.
IMF 때문에 남편들의 실직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움추러든 남편의 어깨를 보듬어 안으며 어려움을 이겨내려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몇몇 철없는 아내들은 초강력 바가지를 긁는가 하면 심한 경우 할퀴거나 구타까지 한다고 한다.
IMF는 대한민국 땅에 엉뚱한 르네상스까지 불러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