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3)이휘재
기사입력 1998년 03월 27일 16시 00분
`일요일 일요일 밤에' FD로 일할때였다. `우정의 무대'를 찾아가 몰래 카메라를 찍는 코너였는데 가짜 군인이 한명 필요하게 됐다.
"어이, 이휘재 너말고 또 누가 있겠냐?"
스태프들은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정성들여 기른 장발을 눈물을 머금고 자를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윗머리가 좀 긴 장교형으로 깎고 촬영장인 군부대로 향했다. 그런데 PD분이 호통을 쳤다. "그런 머리를 보고 누가 군인이라고 속겠냐！"
할수없이 군부대에서 군용 바리캉으로 그야말로 빡빡 밀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촬영직전 군부대장이 "부대안에서 몰래 카메라를 찍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게 아닌가. 스태프들의 간곡한 설득에도 부대장의 고집은 꺾지 못했고, 촬영은 무산됐다.
집에 돌아오자 빡빡머리를 한 나를 보고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 지셨다. 놀란 어머니를 본 내 가슴속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뒤 난 방송국에서 두고두고 놀림감이 됐다. 누군가 뒤에서 `키득키득' 웃으면 나를 비웃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고생끝에 낙'이라는 표현은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단역 출연과 FD일을 1년정도 했을때였다. `오늘은 좋은날'의 이응주PD가 문득 "데뷔해"라고 말씀하시는게 아닌가. 웬 행운?
대학에 합격하고 미친듯 춤을 추었을때처럼 기뻤다.
이PD는 방송국을 오가며 인사성이 밝고 웃음이 맑은 나를 눈여겨 보아 두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좋은날'의 첫 배역은 할아버지였다. 이때 내 나이는 불과 21세.
하지만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칠수는 없었다. 첫 대본을 받은 날 함께 첫 고정출연하게된 최성훈과 MBC 모니터실에서 꼬박 밤을 새웠다. 대사는 몇줄되지도 않았다. 하숙비를 못낸 최성훈에게 "방빼"하고 외친 뒤 몇마디를 더하는게 전부였다. 하지만 난 목에서 쇳소리가 날때까지 수백번 반복했다.
이런 열성덕분인지 `오늘은 좋은날'에서 서서히 주목을 받았다. 꼬마에서부터 할아버지까지의 역할을 맡아 넘어지고 뛰고 뒹굴었다.
노력의 결실일까? `오늘은 좋은날'에서 기반을 잡아갈 무렵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송창의PD가 찾아왔다. 그분과 만나면서 나는 또 `할까 말까'의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수많은 미녀를 품에 안는 행운아로 변신하게 되는데 가수 김완선누나와의 포옹신은 지금 생각해도 무릎이 다 떨린다.[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