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청춘일기] 이휘재(1)
기사입력 1998년 03월 25일 15시 22분
MBC TV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이어 인기 시트콤 `남자셋 여자셋'에 합류, 특유의 순발력 연기를 펼치고 있는 개그맨 이휘재의 방송입문과 무명시절의 눈물나는 청춘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먼저 이런 기회가 주어지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인생은 오묘하다. 어떻게 살든 아름답지 않은 삶이 있는가."
얼마 살진 않았지만 나는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했다.
이휘재란 이름석자가 알려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생극장'. 어쩌면 그것은 내 이야기인 것 같다는 착각이 수시로 든다.
나의 연기인생은 `박카스' 한병으로 시작됐다.
충암고 3학년때인 90년 겨울은 너무나 춥고 을씨년스러웠다. 고려대 독어독문학과에 떨어지며 처음으로 인생의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사실은 예능계 대학에 가고 싶었다. 떨어지긴 했지만 인문계에 응시했던 것은 엄격하신 아버지의 강권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고2때 예능계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말을 들으시자마자 때릴 무기부터 찾을 정도로 부정적이셨다.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날. 어머니는 아버지 몰래 내손에 무엇인가를 쥐어 주셨다. 놀랍게도 서울예전 응시원서였다. 실기시험을 보러가는 날 어머니는 또 조용히 부르셨다. "시험 직전에 이걸 마셔！ 원샷으로…."
시험장 문앞에 섰을때 가슴속에서 불방망이질이 시작됐다. `그래, 어머니가 준 박카스가 있었지.'
뚜껑을 여는 순간 독한 양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숫기가 없는 내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식의 우황청심환'이었던 셈이다.
술김에 시험을 봤으니 제대로 될리가 있는가? `리어왕'의 한 구절을 읽는 거였는데 실수투성이었다. 게다가 경쟁률이 12대1. `틀렸구나' 생각했다. 합격자 발표가 있는날. 서울예전 비탈길을 혼자서 터벅터벅 올라갔다. 그런데 그것은 기적이었다.
`이영재'. 내 본명이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끼어있는 것이 아닌가? 눈을 비비고 손등을 꼬집고 다시 봤지만 꿈이 아니었다.
낄낄거리며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수위아저씨를 덥석 껴안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내 정신이 아니었다.
아버지께 서울예전에 응시했고, 합격했단 말씀을 처음으로 드렸다.
"다른 대학에 편입해！"
그때 아버지는 너무나 야속했다.
아무튼 내게 서울예전 입학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주인공이 된 계기가 됐으니 말이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그렇게도 연기자가 되는걸 못마땅하게 여기셨던 아버지도 `인생극장'에서 수많은 미녀스타들을 상대하자 확 달라지셨다.
"얘, 다음주는 누구랑 찍냐." "김혜수가 그렇게 예쁘더냐." "에구, 열살만 젊었으면 술이라도 한잔 사주는 건데…."
그때마다 난 "안돼요, 아버지, 큰일나요"하고 소리쳤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