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강원도의힘' 구질구질한 일상 포착
기사입력 1998년 03월 25일 15시 22분
90년대 서울의 남루한 일상을 정교하게 관찰한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한국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홍상수 감독은 두번째 작품 `강원도의 힘'에서도 특유의 `일상 포착'으로 일관하고 있다.
몇몇 강원도 출신 인사들이 단체 관람을 해야겠다는 농담반 진담반의 우스갯소리를 비웃 듯 홍 감독은 `강원도의 힘'에서 아무런 힘도 보여주지 않는다.
설악산이나 동해바다로 연상되는 강원도의 여정이 영화의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로드 무비도 아니며, 30대 초반의 대학강사와 여대생의 엇갈린 사랑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멜로 영화의 색채를 띠지도 않는다.
홍 감독의 관심은 오로지 두 남녀의 일상적인 행동과 언어를 포착하는데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유부남인 대학강사 상권(백종학)과 상권의 강의를 듣는 여대생 지숙(오윤홍). 잠깐 사랑했다가 헤어진 두 남녀의 이야기는 마치 1, 2부처럼 나뉘어 전개된다.
지숙은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로 여행을 떠난다. 흔들리는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밤을 새워 강릉역에 도착하고 낙산과 설악산 등을 찾는다.
오색에서 만난 낯선 경찰관과 같이 한 술자리. 친구들과 다투고, 술에 취한 뒤 경찰관과 잠도 잔다.
상권도 후배 재완(전재현)과 강원도 여행에 나선다. 둘이 타고 있는 열차에 지숙도 함께 타고 있으나 영화속의 인물들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른다. 상권과 지숙의 여정은 동일한 시간, 동일한 공간속에서 진행되지만 관객들만 이 사실을 알 뿐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처럼 영화적 시공간을 해체한 형식이다. 지독한 일상을 잡아내려는 홍 감독의 연출 의도는 인위적인 조명이나 배우들의 작위적인 연기를 최대한 배제한 촬영 방식으로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구질구질한 삶의 껍데기는 영화속에 등장하는 이른바 `식자층'의 위선과 교만 등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상권이 교수 임용을 청탁하기 위해 주임교수를 찾아갔더니 기껏 일본 스모를 보고 있다거나, 비싼 양주를 내밀자 "뭘 이런 걸, 이거 블루구만"라며 받아드는 모습 등이 그 예.
상권과 재완도 마찬가지. 설악산에서 만난 여자에게 추파를 던진다거나 나이트클럽에서 여자를 사서 섹스를 하기도 한다.
연기가 처음인 백종학과 오윤홍 등의 배우는 이러환 홍 감독의 의도대로 지극히 일상적이고 리얼한 연기로 자연스러운 영상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했다. (4월 4일 시네코아 동숭시네마텍 개봉)
[이창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