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 실종(1)
기사입력 1998년 03월 02일 13시 42분
나일강에서 습기찬 미풍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뜨거운 날씨였다.
이집트의 5월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혹서의 계절이다.
오경미는 버스의 옆쪽 차체에 붙어서서 직사광선을 피하고 있었다.
룩소르 신전 관광을 마친 참이어서 더위 때문에 온몸이 녹아 내릴듯 피곤했다.
옆에 서 있던 김선희가 지친 얼굴로 오경미를 바라보았다.
"얘, 그만 호텔로 돌아가자. 더워 죽겠어."
"카르나크 신전을 안 볼 셈이야?"
"그건 내일 우리 둘이만 나와서 보자."
"안돼. 그러면 스케줄이 하루 늦어져."
일행들이 나오기 시작 했으므로 김선희는 더이상 주장하지 않았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섞인 40명 가량의 일행이었는데 한국인은 그들 두사람 뿐이다.
"저 사람은 아까부터 자꾸 너만 봐"하고 김선희가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저기 흰 셔츠를 입은 아랍인 말이야."
그러자 오경미가 피식 웃었다.
"그 사람은 네가 자꾸 저를 본다고 생각하겠다."
그들의 앞을 지나던 50대의 서양인이 웃음띤 얼굴로 눈인사를 했다.
"너는 저런 태도가 마음에 드니?"
그가 지났을 때 오경미가 묻자 김선희는 머리를 저었다.
"저것도 싫어. 신비감이 없어져."
"넌 어쩔수 없이 된장이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일 늦게온 이집트인 운전사가 버스에 올랐으므로 그들은 사우나실 같은 버스에 올랐다.
다음은 카르나크 신전 관광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통로 건너편 좌석에 앉은 동양인이 오경미에게 물었다.
"한국인 입니까?"
세련된 영어였다.
"네. 당신은 일본인 이시죠?"
50대쯤의 사내였는데 인상이 좋았다.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난 당신들의 대화를 듣고 알았지만 당신은 어떻게 내가 일본인인줄 알았습니까?"
"당신 가방에 쓰여진 일본어를 보았지요."
"허어, 그렇군."
오경미는 문득 뒤쪽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머리를 돌렸다. 일본인의 뒤쪽 두번째 좌석에 앉은 아랍인이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는 검은 눈동자를 돌렸다.
버스는 왼쪽으로 나일강을 끼고 달리는 중이었다. 옆자리의 김선희가 그녀의 어깨를 밀었다.
"얘, 오늘밤에 호텔 나이트 크럽에나 갈까?"
"안돼. 오늘밤에 준석씨한테 전화하기로 했어."
"그럼 전화하고 가자."
"싫어 쉴테야."
"이년아, 기회는 이번 뿐이야. 싱글로 남자 만나는건."
오경미는 가을에 이준석과 결혼할 예정인 것이다.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섰으므로 그들은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랍인 한명과 서양인 한명이 문으로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의 아랍인도 그들을 스치고 지나 문으로 다가갔다.
"어머, 저 사람도 내리네."
김선희가 아쉬운듯 말했다. 아마 옆쪽의 호텔로 갈 모양이었다.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이젠 도로 양쪽이 황량한 벌판이다. 김선희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을 때였다.
오경미는 버스 안에 갑자기 환한 섬광이 가득찬 것을 보았다. 동시에 엄청난 폭발음을 들었다.
온몸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으나 오경미의 의식은 다음 순간에 꺼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