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대세(7)

기사입력 1998년 02월 23일 15시 57분


자리에서 일어선 윤의충은 청을 나와 내실로 들어섰다.

내실의 문을 열어 놓은채로 주위의 시종들을 물리치자 곧 향기와 함께 향비가 문으로 들어섰다.

간편한 바지 저고리 차림으로 미소띈 얼굴이었다.

"장군, 전공을 축하 드립니다."

윤의충이 다가선 향비를 맞아 일어섰다.

"오실줄 알고 있었소이다."

마주 앉은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향비는 요염하도록 아름다웠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에 닿은 윤의충의 시선은 끝없이 빨려 들어갔다.

"북방군 총사령이 되셨으니 곧 감숙, 중서, 영북행성의 군사를 모아 북상 하시겠군요."

꽃잎같은 입술을 벌려 말한 향비가 다시 웃었다.

"하이도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쿠빌라이 황제는 나에게 충성과 신의를 강조 하지는 않았소."

윤의충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감숙성주가 된 이유를 아시오?"

"압니다. 제국 서북방의 요충지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쿠빌라이 황제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향비가 흰이를 드러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배신이라고 말씀 하셨는데 쿠빌라이가 장군을 신임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곧 부사령 세명이 올것이고 그들은 모두 몽골인입니다. 장군께서는 실권을 행사하지 못하실 겁니다."

"…."

"감숙성 백성과 카라차르를 따르는 감숙성군을 안돈시키기 위한 술책입니다. 감숙성군이 흔들리면 제국의 북방이 무너질 테니까요."

그러자 이번에는 윤의충의 얼굴에 웃음기가 띠어졌다.

"황제는 나에게 먼곳을 보라는 교훈을 주셨소.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잔꾀가 있었구려."

너무 쉽게 긍정을 한 때문인지 향비가 입을 다물었다. 윤의충이 정색을 했다.

"나에겐 딱 맞는 말이었소. 나는 결코 누구의 신하가 될 생각이 없소이다. 북방이건 서역이건 새 땅을 찾아나설 것이오."

"…."

"나는 결코 이곳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오."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상대는 하이도 폐하가 되겠군요."

"길을 터주지 않는다면."

"북방 전역은 하이도 폐하의 영지입니다."

"서쪽에는 아직도 광대한 땅이 펼쳐져 있소."

가늘게 숨을 뱉은 향비가 그를 바라보았다.

"카라차르의 전부인(前夫人)을 데리고 가시겠군요."

"약속을 했소."

"약속 때문입니까?"

"나는 단 하루도 그녀를 잊어 본적이 없소이다."

"그 여자가 장군의 대망(大望)에 장애물이 된다면 그땐 어쩌시렵니까?"

그러자 윤의충이 다시 소리없이 웃었다.

"그 여자야 말로 내 대망의 하나요. 내 활력의 원천이 어찌 장애물이 되겠소?"

한동안 윤의충을 뚫어질듯 쏘아보던 향비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기가 가셔졌다.

그리고 크게 뜬 눈에 습기가 배이더니 두 줄기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억지 말씀을 하십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도 맑았다.

"나는 장군의 배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고 계시면서 현실에 맞지 않는 말씀만 하십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