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씨] '한여인의 애타는 망부가'
기사입력 1998년 02월 10일 15시 43분
중견 소설가 김주영씨(59)가 장편 `홍어'(문이당)를 내놓았다.
지난해 여름 계간 `작가세계'에 중편으로 발표했던 것을 장편으로 개작한 작품이다.
`새벽이었다. 거위털같은 함박눈이 한들거리며 내려쌓이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소설은 태백산 남쪽에 자리잡은 한 산골 마을이 배경이다.
여자와 바람이 나 야반 도주한 아버지를 기다리며 삯바느질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삶이 열세살 소년 세영의 시점으로 그려진다.
폭설이 몰아치던 음력 12월의 어느날. 떠돌이 소녀가 소년의 집을 찾아오고, 어머니는 소녀를 받아들여 삼례라는 이름까지 붙여준다.
어머니는 부엌 문설주에 홍어(아버지 별명도 홍어다)를 걸어두기도 하고, 겨울이면 세영에게 가오리연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 모두가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
집안 일을 도맡아 하던 삼례는 눈오는 어느날 말없이 사라진다. 이듬해 겨울 소년은 삼례가 읍내 술집 색시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소년은 삼례를 찾아나서고, 이를 안 어머니는 아버지가 오면 쓰려고 모아둔 돈을 삼례에게 건네주며 떠나라고 한다.
그리고 또다른 여인이 눈쌓인 어느날 어린아이를 업고 찾아온다. 여인은 아이를 두고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는 세영의 동생이다.
어머니는 어린아이에게 먹일 달걀을 위해 암탉 두 마리와 수탉 한 마리를 사온다. 수탉 역시 홍어나 가오리연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
아버지가 돌아온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온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덮고 자던 이부자리에는 어머니가 누웠다 빠져나간 흔적만 남아 있다. 어머니는 말없이 떠난 것이다.
"요즘 소설은 너무 들떠있다고 봅니다. 고층 아파트 7, 8층 정도에 산다고 할까요. 그래서 아주 조용한 소설을 써봤습니다. 페미니즘 시각에서 보면 진부할지도 모르겠지만, 여인의 삶의 진수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등장 인물들 가운데 작가는 삼례에게 가장 애착이 간다고 말한다. 어머니와 달리 `몸으로 부딪치며 사는 여자'인 삼례의 생명력에 이끌린다는 것이다.
[이승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