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권오민 2단●서봉수 9단
기사입력 1998년 02월 05일 15시 49분
제11보(172∼186)＝요즘 신예들의 장점은 탁월한 승부감각이다. 철저한 형세판단을 근거로 조금이라도 불리함을 감지하면 무서울 정도로 승부수를 띄워온다. 그 끈질김과 처절함이 선배기사들을 기죽게 만들고 혼란에 빠뜨리곤 한다.
이젠 바둑이 단순히 두뇌싸움이 아닌, 체력과 정신력에서 뒤지는 한 끝까지 집중할 수 있는 힘이 달려 버티지 못한다. 중견기사들이 신예들에 비해 성적이 저조한 것도 그런 부분인 것이다.
애초 백은 중앙을 탈출하기 전에 언제라도 72나 74의 곳을 선수할 수 있었다. 그랬으면 이 판은 백의 멋진 역전 드라마가 될 뻔했다. 그것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흑 73의 역습을 허용했고 이제 백 말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모습. 백 74．76은 던질 곳을 찾으려는 최후의 몸부림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관전자의 눈을 의심케한 흑의 패착이 나왔는데 흑 77이다. 알기쉽게 X참고도 1〉 흑 1로 꽉 이었으면 그만이었다. 백 2엔 흑 3으로 넘어 상황 끝. 물론 이 다음 백 A, 흑 B, 백 C면 몸통은 살 수가 있다. 그러나 흑 D로 꼬리가 잘리면 백으로선 생불여사.
그랬던 것을 백 78로 끊기자 흑은 더이상 백 말을 추궁할 수 없게 됐다. 추측컨대 흑은 X참고도 2〉 흑 1로 삶이 없다고 착각한 듯하다. 하지만 백 2로 평범히 이으면 그만이었던 것. 그것을 뒤늦게 깨닫고 흑 79로 끊었지만 백 80 뒤로 모는 수가 준비되어 있어 84까지 삶에 지장이 없다.
86 다음 `가'와 `나'가 맞보기. 흑 85로 X참고도 3〉흑 1은 백 2로 역시 산다. 서 9단으로선 땅을 칠 허무한 종국이었다.
[해설．김재구 8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