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30)

기사입력 1998년 02월 05일 15시 49분


구광은 하귀를 베었다.

하귀의 군세가 혼란에 빠졌을때 후퇴하던 만척이 군사를 돌려 역습해 왔으므로 양군은 혼전 상태가 되었다가 제각기 군사를 물렸다.

만척의 군사는 지쳐있었고 하귀의 선봉 3만은 주장(主將)을 잃어 재정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양군 모두 상처를 입었지만 고려군과 여진 연합군의 사기는 충천했다.

특히 이번 전투에 참가한 고려기병 2천은 장수 넷에 군사 1천을 잃었음에도 강한 자신감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기마군을 이끄는 만척이 고려인 인데다 적의 주장 하귀를 벤 구광 또한 고려인 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허복은 토리반을 베고 죽었으며 나주목 출신의 교위는 하귀의 막장 하나와 맞찔려 죽었다.

수만리밖 이역땅에서 그것도 원제국의 화살받이 용병으로 싸우는 것이지만 대전(大戰)의 교훈은 컸다.

윤의충이 1만여기의 기마군을 이끌고 나타났을때 살아남은 고려 군사는 모두 울었다.

정남 대장군에 정동행성병마절도사의 영기를 펄럭이며 다가온 윤의충은 장군 최경부의 군례를 받고는 고려 군사를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말고삐를 채어 멈춰섰다.

"장하다. 고려 군사들이여！"

그의 목소리가 평원위에 울려 퍼졌다.

"살아 돌아가거든 너희들의 기개를 당할 적이 없었다고 전해라！"

군사 서넛이 소리내어 울었고 눈을 씻는 자들이 많았다.

진막으로 들어선 윤의충의 앞으로 제장들이 모여섰다.

후군을 맡았던 윤의충이 구광에게 5천기를 이끌게 하고 남송 선봉군의 옆구리를 찔러 올줄은 고려군도 몰랐던 것이다.

고려군 부사령 한석기가 나섰다.

"서전(緖戰)을 승리로 이끈것은 대도독께서 원군을 보내주신 덕분이오."

그는 목이 메었다.

"고려군사는 감읍하고 있소이다."

"장세걸의 기병 5만이 다가오고 있소."

윤의충이 제장들을 둘러보았다.

"비록 하귀는 죽었지만 그의 기마군 2만여기가 남아있소. 우리는 고려 여진의 2만기로 그들을 막아야 하오."

그러자 윤의충의 부장이며 부도독인 에르케가 나섰다.

"감숙성의 기마군 1만5천은 보군과 함께 중군이 되었소. 이틀후에 바얀 총사령의 직할 기마군 5만이 올때까지 우리가 버텨야 하오."

힐끔 윤의충을 바라본 그가 말을 이었다.

"우리 정동행성군은 자진하여 후군에서 달려온 것이오. 따라서 보군 4만은 아직 뒤쪽에 있으니 보군은 고려 보군에 의지해야 되오."

"장졸들의 사기가 높소이다."

아직도 피투성이가된 갑옷을 벗지 못한 최경부가 말했다.

"기필코 막을 것이오."

"고려 상장군 이도명을 부르라."

윤의충이 말하자 진막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도명은 지금 자신의 진막안에서 군사들의 감시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잠시후에 진막에 이도명이 들어섰는데 굳어진 얼굴이었다. 그가 윤의충을 향해 군례를 했다.

"대도독께서 잘 오셨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뵐까 했었소이다."

머리를 든 그가 고려군 장수들을 둘러 보았다.

"적전에서 하극상이 일어났소이다. 대도독께서 군령으로 처리해 주시오."

고려말 이었지만 몽골인 에르케도 여진장수들도 분위기를 아는지 윤의충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