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리뷰]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
기사입력 1998년 02월 03일 15시 54분
극단 산울림이 서울 신촌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 중인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사고사'는 익살, 냉소, 해학이 어우러진 통열한 정치 풍자 코미디이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작가 다리오 포의 대표작. 국내 정상의 극단이 만든 완성도 높은 무대로 특히 개성있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한층 빛나는 작품이다.
지난달 15일 개막한 이래 젊은 층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객들이 몰려들어 불황 속에서도 많은 관객을 끌고 있는 인기 무대.
한 무정부주의자가 경찰의 심문을 받던 중 죽은 사건이 단순한 사고사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점을 한 미치광이를 통해 밝혀낸다는 게 극의 흐름이다.
마치 우리에게 있어 유신시절 중앙정보부 청사에서 조사받던 중 자살했다고 발표된 서울대 최종길 교수사건,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등을 연상시킨다.
이 무대는 한 집단이 권력유지를 위해 조작, 은폐하는 정치적 속임수는 어느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구조적인 범죄로 나타나고 있음을 유쾌한 웃음 속에 신랄하게 폭로하고 있다.
자칫 무겁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건을 원작이 가지고 있는 통렬한 풍자와 재치있는 성격창조를 통해 웃으면서 삶의 진실성을 찾는 코미디로 그려내 주목을 끈다.
연출가 채윤일은 정치의 메카니즘이란 본시 황당무계한 코미디임을 인식, 이탈리아 전통희극 양식인 `코메디아 델 아르테'의 어릿광대 역할을 최대한 활용, 극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연극계의 재치덩어리 안석환은 미치광이_경위_고등법원판사_국립과학수사연구소장_교황청주교 등 1인 5역을 맛깔스럽게 형상화하는 등 눈부신 연기를 펼치고 있다. 정재진, 이창직, 이대연의 성격연기도 돋보이며 오랜만에 무대에 선 여배우 조성희의 당찬 배역소화도 눈길을 끈다.
연극이 인간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간의 삶을 되짚어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현실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풍자 비판 좀더 나은 삶의 진실성에 도달할 수 있는 상상공간을 마련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 무대는 더욱 빛을 발한다.
3월 15일까지. 화∼목 오후 7시. 금 토 공휴일 오후 3, 7시. 일 오후 3시. (02) 334_5915
[박용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