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자리지키기' 007작전
기사입력 1998년 01월 20일 15시 33분
IMF시대를 맞아 `자리사수'를 위한 직장인들의 `서바이벌 아이디어'가 만발하고 있다.
샐러리맨의 목숨이 파리목숨만도 못한 세상에서 근무시간중 자리를 비우다 적발되는 등 업무태만의 꼬투리라도 잡히는 날엔 당장 어떤 `험한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묘안이 백출하고 있다.
회사원 김모양（27）은 얼마전 근무시간중 미용실을 다녀오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감행했다.
퇴근후 맞선을 앞두고 있었지만, 전날 야근을 한 탓에 미처 머리를 가꾸지 못했던 것.
담당미용사가 머리손질을 해준 뒤 평소대로 젤을 바르려 하자 김양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젤을 바르면 자르르 흐르는 윤기에 머리카락에는 잔뜩 힘이 들어가게 돼 단번에 근무시간중 미용실에 다녀온 사실이 들통나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의 한 미용실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는 김재윤씨（29）는 "머리를 손질한 뒤 젤이나 무스를 바르지 않는 손님가운데 상당수가 근무시간중 잠시 짬을 낸 직장인들"이라며 "이런 손님들은 머리손질한 티가 나지 않게 하기 위해 컷도 조금만 하는 등 몸을 사린다"고 말했다.
남자직장인의 경우 쌓인 피로를 견디다 못해 눈을 피해 잠시 사우나를 다녀오더라도 머리감는 것은 물론 스킨로션이나 콜드크림을 바르는 것도 금물이다.
기름기로 번들거리는 피부와 화장품냄새로 `근무지 이탈'사실이 금세 드러날 수 있기 때문.
자리를 비우더라도 책상에 서류 등 일거리를 잔뜩 벌여놓는 것도 요즘 직장인들이 자주 써먹는 생존전략이다.
책상에 서류와 업무수첩 등을 있는 대로 펼쳐놔야 지나가던 상사가 봐도 열심히 일을 하다 잠시 화장실에 간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직장상사의 심금을 울리는 것도 요즘 샐러리맨들이 애용하는 `심리전술'의 하나다.
"집사람이 몸이 약해 큰일"이라거나 "아파트대출금 때문에 밤잠이 안 온다"는 등 평소에 `앓는 소리'를 늘어놓으며 직장상사의 동정을 구해야 정리해고의 칼날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감에서다.
심지어 일부 회사원들 사이에서는 늘 바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업무를 지연하는 편법까지 동원, IMF시대의 우울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조직축소와 구조조정의 칼바람속에 항상 뭔가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일찌감치 해치웠을 업무도 가능한한 붙잡고 있는 것.
H그룹 계열사의 김모과장（38）은 "한솥밥을 먹던 직장동료들끼리도 서로 눈치를 보는 현실이 서글플 뿐"이라며 "그래도 나하나만 바라보는 가족을 생각하면 직장에서 뭔들 못하겠냐"고 반문했다.
[이백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