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정벌(11)

기사입력 1998년 01월 14일 15시 43분


체르비가 개원성을 떠난지 이틀후 였다.

성안의 성주저택 앞에 남루한 차림의 여행객이 멈춰섰다. 대문앞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위사가 사내의 아래위를 훑어 보았다.

"여기가 어디라고 기웃거리는 게냐? 썩 물러가！"

여진말이었다. 그러자 한걸음 다가선 사내가 여진말로 말했다.

"대감께 고려에서 만척이 왔다고 전해라."

"고려에서온 만척이라고?"

위사의 기세는 조금 눅어졌지만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대감께선 바쁘시다. 만나자는 고려인이 하나둘이 아녀."

"별장 만척이라고만 전해. 이놈아."

눈을 치켜뜬 만척이 위사를 노려보았다.

"단칼에 목을 베기전에 어서 서둘러라."

잠시후에 만척은 윤의충의 앞에 엎드려 있었다. 청 안에는 그들 둘 뿐이다.

"대감, 이렇게 다시 뵙게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몸을 굳힌 만척은 목이 메었다.

"소인은 소식은 듣고 있었사오나 딸린 식솔때문에 몸을 뺄수가 없었소이다."

"너도 야적으로 살았느냐?"

윤의충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묻자 그는 머리를 떨구었다.

"전라도에서 삼백 식솔을 거느리고 있었습지요."

"너도 무장이 아니면 야적단 둘중의 하나로 살아야할 운명이었다. 잘왔다."

"불러 주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소이다."

"명분없이 지난 세월이었다. 너까지 개죽음 시키기는 싫었다."

"몽골제국의 정동행성 병마절도사에 이제 정남대도독이 되셨소이다. 지금은 명분을 세우셨소이까?"

비수를 던지는것 같은 물음이다. 긴장으로 눈을 부릅뜬 만척의 이마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윤의충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철천지원수인 몽골제국의 관리가 된 것을 너는 쉽게 이해할수 없을 것이다."

"군사를 몰아 몽골제국을 치시려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이다."

"그럴순 없다."

의자에 등을 기댄 윤의충이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난 남송절벌에 참여 할것이다. 그래서 남송을 멸망시키는데 일조를 한다."

"…."

"내가 살아 남는다면 몽골제국에서 인정받는 고려인이 되겠지. 그때 나는 내길을 간다."

그가 따뜻한 시선으로 만척을 바라보았다.

"네가 옆에서 지켜 보아라. 변방 소국의 무장이 어떤 그릇인가를."

"소인은 그저 대감만을 따르기로 마음을 굳힌 사람이올시다."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씻은 만척이 길게 숨을 뱉었다.

"고려는 갈수록 썩고 있소이다. 백성은 기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강화섬의 무리는 갈수록 폭정을 일삼아오고 있소이다. 허나 이제 소인도 고려땅을 잊기로 했소."

그가 머리를 들었다.

"대감, 고려땅을 떠나기전에 왜선 두척을 잡았소이다. 그런데 그 선단은 일본 영주가 보낸 사신 일행이 타고 있었소."

"…."

"도망친 왜인 하나를 잡아 물었더니 그 배들은 전라도에 잠시 기항 한다음 이곳 요동으로 올 계획이었다고 했소이다."

요동이라면 정동행성이고 수장은 윤의충이다. 윤의충이 머리를 끄덕였다.

"정탐할 목적인지도 모른다. 남송정벌이 끝나면 군사를 왜국으로 돌릴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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