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성의 풍속사] (9)아랍 탁발승
기사입력 1998년 01월 10일 14시 18분
신통력이 뛰어난 도사를 자처하며 부녀자를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는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하곤 한다.
얼마전에도 이런 엉터리 도사 한명이 경찰에 붙잡혀 스포츠조선 사회면의 `수사비화 X화일_도사 사기꾼'의 주인공으로 맹활약했다.
이런 유의 사건기사를 읽다보면 중세 아랍 이슬람교의 파킬이라는 이름의 탁발승이 생각난다.
파킬은 신통력을 가진 성（性）의 행상인이었다. 파킬은 이슬람교의 축제일인 모프름이나 라마단의 제례 때가 되면 닥치는 대로 아무 여자나 붙잡고 접촉했다.
여자들은 파킬이 원하면 감읍하며 몸을 허락했다. 자발적으로 몸을 바치는 여인도 줄을 이었다. 그 긴 줄에는 순결을 지키던 처녀도, 정숙을 자랑하던 유부녀도 끼여 있었다.
심지어 파킬이 떠돌다가 민가에 하룻밤 묵기를 청하면 집주인 사내는 아내나 딸을 방으로 들여보내 잠자리 시중을 들도록 했다. 중세 아랍의 여인들은 왜 그렇게 파킬 앞에서 치마를 내렸을까.
"파킬과 하면 몸 안에 있던 악성 유행병이 사라지거든요."
"파킬과 하면 악귀를 물리치죠."
"파킬과 하면 천재지변까지 피할 수 있답니다."
아랍의 여인들이 파킬을 받아들인 것은 바로 이런 종교적 믿음 때문이었다. 과연 파킬의 활동이 돋보이던 장소는 유행병이 창궐하던 곳, 전쟁터, 천재지변이 휩쓸고 간 자리였다.
한데 흥미로운 사실은 파킬은 대부분 아지무라는 즐거운 병에 걸린 환자였다는 사실이다. 아지무를 현대 표준 한국어로 번역하면 지속 발기증이다. 쉽게 말하면 지루라는 얘기다. 파킬은 또한 튼튼하고 커다란 양물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안팎 상황이 유리해서인지 파킬은 이곳저곳 활보하다 욕심이 발동하면 주저없이 외쳤다.
"나는 하고싶도다！"
파킬이 거포처럼 일어선 양근을 시위하면서 소리치면 여신도들은 앞을 다투어 그 불길을 식혀주곤 했다.
옛날 아랍 땅에는 왜 이런 풍습이 생겼을까. 성행위가 신통력과 주술, 마법으로 사용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불행과 재해를 막아보기 위한 몸부림이다.
파킬과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하는 사회는 이성이 아직 눈을 못뜨고 있거나 고통스러운 시대일 것이다. 이런 `신통력 도사' 사건이 IMF와는 상관없는 일이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