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반역 (15)

기사입력 1997년 06월 26일 13시 54분


교정도감에 모여앉은 장군들은 모두 고려정권의 실세였다.

제 18대 의종때 정중부가 난을 일으킨 후로 무신정권이 100년 가깝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최충헌의 최씨 가문이 60년을 집권하였으나 최씨 가문의 4대 계승자 최의가 김준과 임연 등에게 살해된 후로 이제는 김준이 집권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교정도감은 고려의 정사를 총괄하는 기구였고 도감의 장인 교정별감은 물론 문하시중겸 해양후인 김준이다.

그가 입을 열었다.

"나주목의 중선(中船) 십여척을 진주목으로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것이야. 그것으로 몽골군은 오덕도에 닿을 수가 있겠지."

쓴웃음을 지은 그가 좌우의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전하께선 그 사연을 적은 상주문을 쿠빌라이한테 보내실 작정이야. 사신으로는 예부상서 한동복이 결정되었어."

앞열에 앉은 임연이 따라 웃었다.

"전하께선 하루에 설사를 몇번했고 방사(房事)를 몇번 하셨다는 것까지 상주하시는 모양이오."

장군 서넛이 소리내어 웃다가 금방 그쳤다. 김준의 표정이 굳은 채로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장용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이시중, 기대원에게 내가 보잔다고 전해주시오."

"알겠소이다. 일시는 언제로 잡으리까?"

"오늘 유시무렵이 좋겠소. 내 사저로 와달라고 해 주시오."

"그렇게 전하리다."

이장용은 을축 6년인 3년전에 왕으로부터 평장사를 제수받고 작년에는 감수국사가 되었다가 올해에는 시중에 임명되었으니 최고위 고관이다.

그러나 병권을 쥐고 있는 김준에게는 깍듯이 예를 표하고 있다. 임연이 다시 나섰다.

"대감, 놈들이 오덕도에 닿기 전에 배를 뒤집어 몰사를 시킨다면 두번다시 일본에 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오. 그것이 상책인 것 같소이다."

"그럴 필요는 없어."

정색한 얼굴로 김준이 그를 바라보았다.

"오덕도는 불모지로 부랑자와 죄수들을 풀어놓았을 뿐이야. 그자들에게 숨길 것도 없다."

"그렇소이까?"

머리를 끄덕인 임연이 주위의 장군들을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배를 뒤집는 것이 더 의심을 받겠소이다. 오히려 순풍을 바라야겠소."

도감에서 회의를 마친 김준이 사저로 돌아왔을 때는 오시가 되어 있었다.

청에 앉은 그의 앞으로 위사장 한단이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교위 한명을 데리고 왔다.

교위가 그를 보더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진주목 방어사 휘하의 교위 정포가 문안드리오."

윤의충이 보낸 파발이다.

김준이 그가 올린 밀지를 받아 펼치더니 눈을 치켜떴다.

"너는 이틀 밤낮을 달려 왔느냐?"

"예. 대감, 광주목 역사의 말이 상하지 않았다면 하루 반나절에 올수도 있었소이다."

"장하다."

밀지를 빠르게 읽은 김준이 머리를 끄덕이고는 한단을 바라보았다.

"이자에게 상으로 금자 스무닢을 주어라. 그리고 내가 답을 쓸동안 쉬도록."

한단이 파발을 수습하고 돌아오자 김준이 생각에서 깨어난듯 머리를 들었다.

"윤의충이 왕창국과 대치상태가 되어있다."

놀란듯 몸을 굳힌 한단을 향해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몽골군 역관이 살해되자 놈들이 진주목사와 윤의충을 모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