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용들의 전쟁 (3)
기사입력 1997년 05월 30일 14시 56분
시간이 지날수록 연못은 점점 핏빛이 됐다.
그러나 킹콩이나 공원이나 흐르는 피 때문에 위축되거나 싸움을 포기할 겁쟁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피를 보자 더 흥분해 상대를 죽일 듯이 날뛰었다.
킹콩의 목덜미 공격에서 겨우 벗어난 공원은 뒤늦게 킹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죽을 힘을 다해 덤볐다.
어쩌면 이 싸움은 전주 출신의 킹콩과 서울대공원 출신의 공원이 에버랜드에 뿌리를 깊게 내리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동물들은 `터'에 가장 민감하다.
사자나 호랑이가 아침마다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것도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다.
또 먹이사냥을 할 때는 간혹 포기도 하지만 영토전쟁을 할 때는 죽기살기로 끝까지 싸우는 것도 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킹콩과 공원의 싸움이 치열한 것도 새로 이주한 땅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 셈이다.
특히 킹콩은 사파리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대권을 거머쥐겠다는 목적이 있기에 배수진을 치고 싸움을 했다.
성급하게 공격하려던 킹콩이 미끄러운 물바닥에서 중심을 잃었다.
머리는 나쁘지만 싸움이라면 한가닥 하는 공원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공원은 킹콩을 올라탄 채 주먹을 마구 날렸다.
연못 대결은 외나무다리에서의 결투와 다름없었다.
사파리의 치안을 맡고 있는 패트롤카가 연못에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승자와 패자가 확실하게 나뉠 때까지 싸움을 하게 된다.
공원의 주먹도 주먹이지만 물에 잠긴 꼴이 된 킹콩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게 더욱 고통스러웠다.
킹콩이 죽을 힘을 다해 공원을 뿌리치고 또다시 맞섰다.
주먹이 엇갈리고 싸움이 계속될수록 상황은 킹콩에게 유리하게 진행됐다.
공원은 킹콩에게 연타를 몇대 얻어맞자 갑자기 물밖으로 나갔다.
이번 기회에 공원을 확실하게 눌러놓겠다고 결심한 킹콩도 연못 밖으로 나갔다.
킹콩이 추격하자 공원은 물에 젖은 솜덩이같은 몸을 이끌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