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열흘 붉은 꽃은 없다 (13)
기사입력 1997년 05월 21일 14시 35분
킹콩은 혼수상태가 된 시커먼스를 헌집 벽 털듯 두들겼다.
패트롤카에 심하게 몇번 당하고 독방생활까지 하는 바람에 잔뜩 주눅들었던 킹콩의 기가 되살아난 것이다.
한데 한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패트롤카는 시커먼스가 킹콩에게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고 있는 것을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할 뿐 도무지 말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었다.
킹콩의 주먹이 바람을 가를 때마다 시커먼스의 얼굴에서는 피가 튀었다.
이름만큼이나 새카만 시커먼스의 얼굴은 피 때문에 검붉은 색이 됐다.
한번 피를 본 킹콩은 잔인성을 되찾아 시커먼스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시커먼스의 목숨은 이제 태풍 앞의 촛불이 됐다.
바로 그때 패트롤카가 특유의 엔진소리를 저음으로 깔며 천천히 다가왔다.
극도로 흥분했던 킹콩은 멀리서 들려오는 엔진소리에도 정신을 차리고 비로소 공격을 중단했다.
그리고는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패트롤카로서는 킹콩에 대한 교육이 끝났다는 판단을 내렸다.
킹콩이 시커먼스를 무자비하게 때릴 때 패트롤카가 아무런 재제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킹콩의 기를 살려 맘모스, 곰보살 등 기존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에버랜드가 킹콩을 전주에서 스카우트한 것도 사파리의 주도권 다툼을 하고 있는 곰들에게 더욱 긴장감을 주기 위한 속셈이었다.
킹콩을 시커먼스와 붙인 것도 싸움 실력을 테스트 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덩치는 작지만 투지가 좋고 싸움 실력이 좋은 시커먼스는 킹콩의 전투력을 알아보는 데 부족함 없이 역할을 다했다.
사육사들을 흐뭇하게 만든 또다른 일은 킹콩이 패트롤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것이다.
평상 때도 아니고 한창 흥분해서 시커먼스를 때리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패트롤카의 엔진소리에 놀라 도망칠 정도면 확실하게 순화가 됐다는 증거였다.
`사상 검증작업'이 끝나자 `킹콩 기살리기'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수곰의 기를 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암곰을 안겨주는 일이었다.
킹콩으로서는 생애 최고의 나날을 맞게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