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치라이트] 99칸 고향집 되찾고 말거야
기사입력 1997년 05월 08일 14시 52분
월드컵축구대표 이기형（24．삼성）에겐 색다른 소망이 하나 있다.
지금도 아련히 떠오르는 어릴적 고향집을 언젠가 되찾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유년을 송두리째 앗아간 운명에 대한 복수라기보다 산산조각이 나버린 어릴적 꿈을 되찾고픈 자그마한 소망이다.
지금은 결혼을 했지만, 얼마전까지 이기형은 고아였다.
이기형의 고향은 전남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
그의 가계는 방 99칸짜리 기와집을 가진, 대대로 내려온 지역의 유지였다.
막내 이기형을 비롯해 6남매（3남3녀）의 삶도 남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나 이기형이 7살, 8살 되던 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잇따라 세상을 뜨면서 남매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됐다.
손에 흙도 만진 적이 없는 남매들은 초등학생인 이기형과 두살 위 누이만을 남기고 모두 공장으로 흩어져 고단한 삶을 시작했다.
특히 큰 형님인 국형씨（36）는 촉망받는 장자에서 졸지에 동생들이 올망졸망 딸린 소년가장이 돼야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99칸짜리 대궐을 잃고 서울로 올라온 남매들은 이기형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12년을 서울 흑석동의 산꼭대기 달동네에서 살았다.
그것도 큰 누나（39）의 두칸짜리 신혼집 방 한칸을 빌려서.
국형씨는 동생들을 출가시키느라 결혼적령기도 넘기고 작년에야 늦장가를 들었다.
고려대에 입학한 기형과 서울 미아리의 단칸방에서 5년을 기거한 뒤 모처럼 얻은 행복.
이기형은 삼성에서 받은 계약금 1억5천만원을 쾌척, 형님의 희생에 그럴듯한 빌라 한채로 보답했다.
이기형은 지난 92년 대학 입학후 12년만에 고향집을 찾았다.
비록 주인은 못 만났지만 99칸짜리 옛날 집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열차안에서 이기형은 다짐했다.
부모님의 손때가 묻은 99칸 집을 언젠가 반드시 되찾겠노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