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아버지와 아들 (6)

기사입력 1997년 05월 08일 14시 25분



허원행이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차영일을 불렀다.

"네 … 허소장님."

"아들이 잘못하면 아버지가 망신당하고 잘못하면 회사 무너지는 거 잘 알죠."

아들 때문에 골치를 썩이던 차성덕 회장이다.

아들 문제가 풀리니 융자까지 거뜬히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국가의 전반적 경제가 침체되기는 해도 이 혼란 중에 제일무역은 거뜬히 버티고 있다.

"지난날 제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우리 꿈을 가집시다. 한보가 터지면 김현철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정계는 대란이 올테고. 우리는 치밀한 분석을 통하여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를 돕는 겁니다. 이건 정치입니다. 그리고 차영일씨를 국회로 보내는 겁니다."

이것이 현재까지의 허원행 마스터 플랜이다.

도무지 확인하기 힘든 소문은 무성하게 퍼져 있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때 김현철이 입후보하기 위하여 뛰어다녔다는 말도 있었고 현 민주계 핵심 인사들과 트러블이 있으며 이는 차기 정권창출을 자신의 주도하에 이뤄 나가겠다는 의지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한보가 터지면 국민들은 무조건 `김현철 개입 의혹'을 들고 일어날 것이다.

"한보 무너지는거 정확한 정보입니까?"

"네. 확실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 민주계 대권후보는 모두 탈락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겁니다. 비교적 돈에 자유로운 이회창, 이수성, 박찬종이 유리할 것이며 민주계의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대세가 판가름 날겁니다."

정보제공자의 분석이다. 허원행이 머리를 갸우뚱했다.

"민주계요? 김심（金心）이 아니고?"

"한보가 터진다는 가정하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일 김현철과 민주계 핵심들간에 갈등이 있다면 민주계라고 해서 한없이 대통령 눈치만 보지는 않을테니까요."

그것은 꿈같은 말이었다. 민주계가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거나 지시를 거역하지는 못한다.

"글쎄요…. 그게…."

"가정이긴 하지만 한보가 터지면 그런 기적같은 일도 생깁니다. 대통령이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않습니까."

"금용계는?"

"제일은행이 가장 큰 피해를 봅니다."

허원행은 깊은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고 각자의 머리는 향후 정국흐름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셔도 취기조차 오르지 않았다. 옆에 조용히 앉아있는 장혜정은 허원행을 만나 `M'호텔에서 나누었던 말을 기억에 떠 올렸다.

"서울 산다고 다 서울사람 아니다."

"이곳은 별천지다. 돈있고 빽있는 사람들은 별천지에 살고 있고, 없는 사람들은 시궁창만 뒤지고 산다."

장혜정. 몇달전만 해도 그녀는 오빠의 빚 3천만원 때문에 온갖 수모를 다 겪으며 살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