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기] 표지모델 데뷔후 문의편지 쇄도 (8)
기사입력 1997년 05월 02일 14시 05분
`플레이보이'에서 처음 촬영할 때가 생각난다.
막상 촬영일이 닥치니 초조했다. 메이크업을 하면서까지 안절부절 못했다. 스튜디오 안에는 사진작가를 비롯해 스태프, 심지어 `플레이보이'의 중역까지 배석해 있었다.
`맙소사, 이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어야 하다니. 이거 아무래도 잘못 온 거 아닐까！'
그러나 나는 얼마 뒤 란제리 차림으로 카메라 앞에 서있었다. 사진은 `플레이보이'가 펴내는 `란제리'지에 실리는 것이었다.
촬영은 예상외로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무엇보다도 다짜고짜 `벗으라'는 요구가 없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한 음악이 스튜디오 안을 흘렀다. 사진작가는 나에게 이런 저런 포즈를 요구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어느덧 한쪽 어깨끈이 흘러내리고, 얼마 뒤에는 또다른 어깨끈마저 흘러내렸다. 나도 모르는 새 알몸이 되어 있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옷을 벗는다는 무안함을 느낄 사이도 없이 나는 사진작가의 요구대로 이런저런 모습들을 연출해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조명과 모델의 포즈, 흘러내리는 머리칼 등에만 주목했다. 무리한 요구는 없었다. 그들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분은 감출 수 있도록 내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내 모습이 `란제리'의 커버로 나간 뒤 `플레이보이'지에는 나에 관한 문의편지가 쇄도했다고 한다. 인상이 강렬하다. 자세히 알고싶다. 앞으로 좀더 소개해달라 등등.
그중에는 일반인들에게도 꽤 잘 알려진 사람들의 메시지도 있었던 모양이다. `플레이보이'측은 그들의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줬다. 유명한 축구선수, 농구선수, 할리우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전화번호였다.
나는 메모지에 적힌 그들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은 핑크빛 란제리를 입은 귀여운 아시안 여자라는 것 뿐. 나 역시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각종 매스콤을 통해 비춰진 것 뿐이다. 그런 상대와 데이트를 시작할 수는 없었다.
나는 메모지를 접어 휴지통에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