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공화국] 아버지와 아들 (1)

기사입력 1997년 05월 02일 14시 04분


자리에 붙어앉아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최소한 제일무역 그룹의 총수 아들인 차영일은 그랬다. 하지만 그는 무너진 자신의 회사를 인수한 허원행의 충고를 귀담아 들었다.

"당신 참 한심한 사람이오. 당신이 아버지 눈에 들기만 하면 회사는 전부 당신 것이 될거요. 한 1년만 꾹 참고 아버지 밑에 가 계세요. 그럼 정말 좋은일 생길거요."

그리고 세시간이나 설득을 시켰다. 술과 여자는 1년만 기다리면 질리도록 대주겠다고 했다. 회사도 키워주고 사회적으로 유명인사가 되도록 해 줄것이며 아버지도 이루지 못한 국회의원까지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돈으로 안되는거 봤소. 당신이 출세해야 나도 덕을 보죠. 차영일씨.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일도 좀 배우고."

이러한 묵계 속에 아버지의 본사 경영 기획실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차장（次長）. 하지만 그는 회장 못지않는 파워를 가지고 있다. 차기 회장감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원이나 임원은 없을 테니까. 전화가 걸려왔다. 사원 하나가 전화기를 넘겨주었다.

"전화 왔습니다. 비서실 입니다."

"전화? …여보세요. …뭐라구. 허소장."

그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살길을 찾아준 은인이며 미래 청사진을 그려주는 사람이다. 사무실 현관까지 달려갔다.

"갑자기 찾아오셨네요. 연락이라도 미리 하시지 않고."

"아닙니다. 커피나 한잔 하고 갈겁니다. 회장님이 기다리시거든요."

응접실로 안내되었다.

"일은 잘 배우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한마디만 더 하고 가야겠습니다. 1년만 기다리세요. 그리고 아버님이 하라는 대로만 하세요. 따분한 생활 끝내 드릴테니. 금배지 한번 달아봐야 할거 아닙니까. 요즘 좀 답답하시죠."

"사실은 좀 그렇습니다. 아버님이 일일이 체크하시니 빠져나갈 틈이 있어야죠."

차회장은 아들을 옆에 앉힌후 출근부터 퇴근까지 퇴근후 집에 돌아가는 시간까지 일일이 체크 한다고 했다. 한눈 한번 파는 날에는 그대로 회사에서 쫓겨날 각오를 하라는 협박을 해두었다고 했다.

"허허 … 오늘 제가 초대하겠습니다. 아버님께 허락 받겠습니다."

그렇게 위로한 후 차성덕 회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아들을 먼저 만난다는 연락에 차회장은 몹시 흐뭇해하고 있었다.

"허소장. 이거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소. 형편없는 자식까지 챙겨 주시고. 그래 사업은 잘 돼갑니까."

"저야 땅짚고 헤엄치기 아닙니까. 회장님 덕분에 사실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제게요? 하세요. 뭐든지."

"아드님 차영일 말입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금배지 달아주고 싶어서요."

"뭐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