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웅] 암투 (14)

기사입력 1997년 04월 10일 14시 29분


김준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는 앞에 나란히 앉은 윤의충과 한단에게 시선도 주지 않았다.

보료에 상반신을 기대고는 옆쪽의 벽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윽고 그가 상체를 세우고는 무거운 정적을 깼다.

"교위 송합이 습격을 받았다. 셋이 죽고 송합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금은 모두 빼앗겼다."

그가 번들거리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한수 중류의 오덕포라는 곳이다. 송합이 조금전에 인편으로 알려왔다."

그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송합은 그곳에서 충주목사가 보낸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

"충주목사가 모을 정병들에게 나눠줄 군비와 군량으로 나갈 금이었다. 분하다."

윤의충이 시선을 떨구었다. 금 삼십근이면 정병 일천명을 석달간 먹일 수 있다.

전란의 와중에도 남송의 상인들이 또는 북방의 여진족이 양곡을 싣고와서 금과 바꾸는 것이다.

"너희 둘중 하나가 오덕포로 가야겠다. 습격한 놈들은 이미 도주했을 것이지만 탐문을 해라. 도대체 어떤 놈들이."

"대감."

윤의충이 시선을 들었다.

"습격한 자는 낭장 두천이나 그의 일당인것 같소이다."

"낭장 두천?"

김준의 눈꼬리가 솟구쳐 올라갔고 한단이 몸을 굳히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두천이라니? 영문을 밝히라."

"예. 대감."

허동복을 잡았던 일부터 숲에서 두천과의 밀담내용과 허동복이 살해된 일까지 말하는 동안 그들은 숨도 죽였다.

이윽고 윤의충이 말을 마쳤으나 김준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종민은 그의 애첩이다. 이틀에 한번은 꼭 동침을 한다.

김준이 어깨를 폈다.

"그렇다면 두천이 종민과 내통하고 있단 말이렷다."

갈라지고 마른 목소리다.

"허 아무갠가 하는 위사놈은 종민의 외사촌 오라비가 아니라 두천이가 보낸 간자（間者）였고."

"그렇사옵니다. 대감."

한단이 입을 떼었다.

"허동복이는 사흘째 종적을 감췄습니다. 윤낭장의 말이 맞는것 같소이다."

턱을 든 김준이 위쪽의 벽을 바라보았다. 방안에 잠시 정적이 덮였고 그것을 김준이 깼다.

"두천은 추밀원부사 임연의 휘하다. 좌별초 12방의 지휘권을 가진 놈이고."

김준을 아비로 부르지만 임연도 최의를 죽인 공신이다. 사병（私兵）도 만만치 않았고 좌별초군이 모두 그의 휘하에 있다.

김준이 길게 숨을 뱉았다.

"내가 부덕한 탓이다. 자식놈들은 믿을 놈이 없고 계집은 간자라니."

"…."

"그년이 내일 보덕사에 제를 지내러 간다. 제 죽은 애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러 간다는데."

김준의 시선이 윤의충에게로 옮겨졌다. 쓴웃음을 지은 얼굴이다.

"벨것은 없다. 사고로 가장해서 죽여라."

"…."

"그리고 두천은 우선 임연과 떨어뜨려 놓은 다음 처리하겠다. 그 배후가 궁금하기도 하고."

다시 김준이 길게 숨을 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