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사회] 소외-고독한 젊은이들의 사랑
기사입력 1997년 03월 19일 13시 44분
예상대로 `홀리데이 인 서울'(김의석감독－시네마서비스 제작)은 홍콩영화 `중경삼림'(왕가위감독)과의 비교논쟁 도마 위에 올랐다. 도시의 이면에 서있는 젊음의 방황과 허무를 쓸쓸하게 그려낸 영화라는 점이 우선 흡사하고, 소외와 고독에 길들여진 4명의 남녀 주인공이 사랑의 상처를 어루만져가는 이야기의 형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기획단계부터 주목을 받아왔던 게 사실. 그리고 완성된 `홀리데이…'은 일단 `중경삼림'의 색깔과 분위기를 상당부분 닮아있는 영화로 태어났다. `열혈남아'로부터 시작돼 `아비정전' `타락천사'에 이르는 동안 종교집단처럼 뿌리내린 왕가위의 열성팬들은 물론 `왕가위가 도대체 뭐냐'는 `반 왕가위파'들에게도 `홀리데이…'은 `토론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홀리데이…'의 주인공들은 `중경삼림'이나 그의 속편쯤으로 인식돼온 `타락천사'의 경우처럼 소외된 인간군상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다. 순진하면서도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호텔의 벨보이()와 고독한 내면을 가진 뇌쇄적인 매력의 다리모델(),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도시를 질주하는 택시드라이버(장동건)와 낯선 사람과의 섹스도 어렵지 않은 퇴폐적인 전화교환수() 등. "단편영화를 찍던 연출습작시대로 돌아가 `처음부터 다시'의 기분으로 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김의석 감독의 연출의도처럼 이들 네 주인공은 소외된 현대인의 내면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내로라하는 국내 톱스타의 명성에 걸맞게 감독의 의중을 훌륭하게 꿰뚫어냈다. 벨보이는 애인과 정기적으로 호텔을 찾아오는 다리모델을 사랑한다. 어느날 다리모델의 애인이 교통사고로 죽자 벨보이는 다리모델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다리모델은 다시 호텔에 나타난다. 택시드라이버는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어서 택시운전을 한다. 역시 어디로 가든 상관없는 호텔의 전화교환수를 태우고 한강다리에도 가고, 택시비를 섹스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화교환수 내면의 외로움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2개의 사랑이야기로 나뉘어 있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 김의석 감독은 절제된 대사와 주인공들의 독백, 빛을 최대한 이용한 조명, 도시의 어두운 구석에 들이댄 카메라 등으로 단절된 도시인의 삶을 드러내보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왕가위 팬들은 `홀리데이…'을 `중경삼림'의 모방이라고 비난한다. 2가지의 사랑이야기를 교차시킨 드라마 구조, 초광각렌즈로 찍거나 고속으로 촬영한 뒤 중간중간 프레임을 드러내 역동성을 강조하는 화면구성 등이 왕가위의 영화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의석 감독은 "왕가위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느꼈던 점을 내 방식으로 끌어들였다"면서 "최근의 뮤직비디오나 외국영화에서도 이같은 기법이 수없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왕가위만의 특허가 아니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김의석과 왕가위 감독의 비교논쟁은 관객들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