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자부활전] 동지로 만나 연인으로
기사입력 1997년 03월 12일 14시 48분
변심한 약혼자를 찾아 파리로, 칸으로 쫓아다니며 온갖 푼수를 다 떨며 새로운 사랑을 얻는 영화 `프렌치 키스'. 멕 라이언은 제법 나이가 들었음에도 귀여운 여인의 매력으로 수많은 남성들을 사로잡았고, 프랑스건달 케빈 클라인도 사랑에 굶주린 연인들에게 멋진 남자로 비쳐졌다.
이광훈 감독의 `패자부활전'(리앤리프로덕션 제작)에서 과 이 바로 그렇다. 한국판 `프렌치 키스'로 불릴만큼 깔끔하게 `뽑아진' 영화 속에서 과 은 이광훈 감독의 상큼하고 따뜻한 사랑만들기에 동참,
자신들이 가진 것 이상의 매력적인 커플로 탄생했다.
이광훈 감독은 데뷔작 `닥터 봉'에서 평가받았던 매끄러운 연출솜씨를 또한번 보여준다. 유쾌하고 따뜻한 로맨틱코미디영화의 특징을 한껏 살려낸 재주가 여간 아니다. `괜찮은 감독'의 명단에 넣어도 좋다.
첫장면도 관객에 대한 이 감독의 서비스다.
로맨틱코미디영화로 알고 보는 첫장면이 마치 감옥을 연상시키는 어두컴컴한 쇠창살과 철문으로 시작된다. 호러무비쯤으로 여겨질 무렵, 패닝된 카메라를 따라가면 호랑이를 살피고 있는 동물원 수의사 민규(장동건)가 등장한다.
화면이 바뀌면 깜찍한 아가씨 은혜()가 날렵한 모습으로 나타나 민규에게 손짓한다. 그리고 은혜의 느닷없는 제안.
"우리 복수해요."
은혜의 애인()이 민규의 애인(김시원)과 사귀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은혜와 민규가 실연당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은혜의 복수열이 대단하다. 애인의 배신을 응징하는 방법도 기발하다. 민규가 동물원에서 사용하는 마취주사를 훔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가 하면 변심한 애인의 아파트의 화재경보기를 울리기도 한다.
그러나 은혜는 마취주사를 잘못 다루다가 자신의 엉덩이에 찌르고 해프닝을 벌인다.
집요하게 복수를 추진하는 은혜와는 달리 민규는 비록 변심했지만 옛애인이 다칠까봐 은혜를 따라다니며 달래기도 하고, 슬쩍 방해하기도 한다. 티격태격.
복수의 방법을 놓고 사사건건 의견충돌도 일으키는 두 사람. 동병상련은 연민을 낳고, 연민은 사랑을 낳는다.
이광훈 감독은 실연의 터널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경쾌한 터치로, 마치 그림엽서 같은 화면을 바탕삼아 엮어낸다. `고개숙인 남자'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의 방송작가 주찬옥의 감칠맛나는 대사도 이 감독의 연출호흡과 잘 맞아떨어진다.
사랑을 느꼈으나 실연의 경험때문에 주저하는 두 사람. 에서의 마지막 장면. 화재경보기를 울려 모든 사람이 빠져나간 공항대합실에서 두 사람은 스프링쿨러가 쏟아지는 속에서 사랑의 키스를 나눈다. 제작진의 고생 흔적이 보이는 대목이다.
디지털녹음과 컴퓨터그래픽, 4번의 색보정 등 3개월여에 걸친 후반작업도 `깔끔한 영화'를 만드는데 한몫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