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공화국] 적과의 동침(16)
기사입력 1997년 02월 25일 14시 53분
호랑이들이 꼬리를 감추고 사자들 눈치를 살피다가 하루가 지나고 새날이 밝았다. 호랑이의 약세를 눈치챈 사자들은 더욱 거들먹거리며 사파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던 중 호랑이의 형편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고가 생겼다. 식사시간이었다. 패트롤카에서 사육사가 던진 고깃덩어리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사육사가 사파리를 돌던 중 코가 석자나 빠져 한쪽 구석에 쭈그려앉은 호식에게 고기를 던져주자 혹시나 하고 패트롤카를 따라다니던 해골파 식구들이 가로챈 것이다. 호랑이왕 호걸의 동생으로 싸움이라면 한가닥하는 호식은 이를 참지 못하고 그중에 만만해보이는 백두를 공격했다. 해골파 막내 백두는 호식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전날 큰형 호걸이 사파리 타이틀전에서 사자왕 포철의 한방에 KO됐고, 막내 호돌이 포철이 이끄는 신진파에 집단구타를 당해 앓아누운 데 대한 복수라도 하듯 호식은 백두를 무섭게 몰아쳤다. 목덜미를 물고 앞발로 배를 짓밟는 순간 뒷다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백두의 형 한라가 뒷다리를 물고늘어진 것이었다. 호식은 뒷발을 뿌리친 뒤 이번에는 한라의 얼굴에 발톱을 꽂았다. 한라 역시 호식의 적수가 못됐다. 한라도 곧 호식의 밑에 깔려 발버둥쳤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해골파 두목 천하가 식사를 마치고 산보를 하다가 조직원인 한라와 백두가 당하는 것을 보고 쏜살같이 달려와 호식을 밀쳐냈다. 천하는 용팔이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당시 왕이었던 빠삐용의 생식기를 물어 쿠데타 성공에 결정적인 공을 세운 싸움꾼이었다. 나이 많은 사자들이 호랑이와의 합사를 앞두고 지방 동물원으로 쫓겨난 뒤 포철과 함께 사자 공화국의 양대 조직을 이끄는 보스로 자라난 천하였다. 천하는 과연 한라나 백두와는 달랐다. 사자 공화국 2인자 천하는 호랑이 2인자인 호식과의 대결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처음부터 맹공을 퍼부었다. 좌우 연타를 날리다가 갑자기 힘으로 밀어붙여 호식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호식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지만 천하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고 거칠게 공략한 것은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