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촌] 빵굽는 마을마다 정 '모락모락'
기사입력 1997년 02월 15일 16시 12분
"다 됐다！" 15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오금동 아남아파트 주부 권순복씨(31) 집 부엌 오븐 앞에 쪼그리고 앉은 4명의 주부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터뜨린다. 가정용 오븐에서 권씨가 막 끄집어낸 것은 따끈따끈한 요구르트 파운드 케이크. 미리 만들어둔 아메리칸 쿠키와 시폰 케이크까지 보태 이날 수업은 이론, 실기 모두가 식탁 위로 한상이다. 권씨가 이웃 주부들을 대상으로 제과제빵 시범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부터. 2평 남짓한 좁은 부엌에서 주 1회 3개월 과정으로 머핀, 파이, 생크림 케이크 등을 만들어오고 있다. 빵을 얻어먹어 본 주부들이 강습회를 해 달라고 성화를 해대 뜻하지 않게 시작하게 됐으나 하다보니 요령도 생기고 재미도 있어 앞으로 계속할 생각이라고 권씨는 말한다. 서울 잠원동 녹원 한신아파트, 송파구 잠실동 장미아파트, 마포구 신수동 현대아파트 등 주부끼리 소그룹을 만들어 제과제빵 만들기 실습을 하는 모임이 아파트촌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번져나가고 있다. 보통 1명의 재능있는 주부가 강사를 자처하고 한 단지내에 사는 주부들이 재료비 명목으로 약간의 수고비를 얹어주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평소 썩여뒀던 오븐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데다 남편과 자녀들의 간식을 손수 만들어줄 수가 있다는 점에서 호응이 큰 편. 서울 마포구 신수동 현대아파트의 오은주씨(31) 집은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마다 7∼8명의 주부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2년전부터 제과제빵 실습을 해온 덕에 소문이 나 이제는 멀리 분당에서 오는 주부까지 있을 정도. 임신중이거나 갓난 아기를 둔 주부의 경우 요리학원이나 문화센터에서 배우는 것에 비해 심적인 부담이 덜해 참여도가 높은 편이라는게 오씨의 설명이다.
서울 삼호아파트의 나선정씨(35)도 빵굽는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웃주부들에게 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줘 `빵 아줌마'로 소문이 나 있다. 빵을 만들고 나눠먹는 과정에서 이웃간의 정이 돈독해지는데다 혼자하면 `요리＝일'이지만 여럿이하면 `요리＝놀이'가 될 수도 있는 등 주부들이 꼽는 장점은 부지기수. 김정현씨(30．서울 잠원동)는 "뜻과 시간이 맞는 주부끼리 한주에 한차례씩 빵과 쿠키를 종류별로 배우고 있다"며 "지난 연말에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빵과 쿠키로 깜짝 파티를 열어줘 현모양처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고 자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