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홍] '손정의 신화' 책으로 읽는다
기사입력 1997년 01월 27일 15시 25분
지난해 가을, 일본에서 최대부수를 자랑하는 종합잡지 `'는 52명의 일간신문 경제기자들을 대상으로 "21세기 일본을 이끌고 갈 경제리더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이 뽑은 경영인 1백명 가운데 톱으로 오른 사람은 뜻밖에 57년생의 30대 한국인 3세였다. 손정의. 21세때 `음성장치 부착 다국어 번역기'라는 발명품으로 단번에 100만 달러의 거금을 번 천재. 일본 최대의 컴퓨터 유통업체인 소프트뱅크사의 회장. 제2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사나이. 그 주인공이 `그래 내가 한국인이오'(청산 간)라는 책으로 자신의 신화를 국내독자들에게 이야기해준다. 언론인 출신의 권도홍씨가 그를 대신해 들려주는 신화는 한편의 기가 막힌 드라마다. 일본 남단 규슈 사카겐 도수에서 가난한 광부의 손자, 궁상맞은 생선행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궁상과 가난을 물려받은 그는 `조센징'이라는 이름도 함께 물려받는다. 유치원시절, 일본인 아이로부터 돌로 머리를 얻어맞은 뒤 충격을 받아 야스모도라는 일본 성씨 뒤로 몸을 숨긴 아픈 기억을 갖고 있을 정도. 그런 핸디캡을 지닌 그가 일본에서 자신의 이름 `손정의'를 되찾고 정상에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뛰어난 두뇌와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갖고 태어났다. 그리고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너는 천재"라고 불러주었다. 그는 아버지의 그런 기대와 격려, 그리고 자신의 오기로 빛나는 `오늘'을 이룬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이즈음에도 `그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기대 이상으로 성공한 자식에 대한 최고의 예우요 찬사다. 그의 사업수완은 어린시절부터 일찌감치 발휘됐다. 일본에서 고교를 다니다 미국 버클리대로 유학한 그는 78년 21세때 `음성장치 부착 다국어 번역기'라는 것을 발명, 여름방학 때 일시 귀국해 샤프사에 10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팔았다. 그 돈을 사업자금으로 삼아 이듬해 학생신분으로 `유니언월드'라는 회사를 차렸고, 졸업하던 24세때는 소프트뱅크사를 창립했다. 그렇게 시작한 가 오늘날 세계 유수의 거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그의 얼굴을 그리려면 심이 굵은 연필이 필요하다. 엮은이인 권도홍씨도 "수많은 단편적인 자료들을 모아 `손정의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건 산보다 큰 호랑이 그림이구나' 하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