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주부들 모여 영어 열기
기사입력 1997년 01월 27일 15시 21분
영어공부로 꽃핀 이웃 사랑이 훈훈히 배어나오는 동네가 있다.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무지개마을 삼성아파트 1008동 202호의 2평 남짓한 공부방에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만 되면 같은 동에 사는 주부 9명이 모여 `ABCD'를 읊어댄다. 영어회화로 시작해 영영사전 외우기를 거쳐 동화읽기로 1시간 수업시간이 끝나면 만학도들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가사를 돌보느라 영어와 담쌓고 지낸 탓에 매번 보는 시험도 즐겁기만 하단다. 이 집 주인이자 강사인 나경희씨(38)는 "1년전 아파트에 처음 입주했을때는 서먹서먹해 이웃간에 인사도 안하고 살았는데 영어공부를 통해 너무 친해졌다"며 "이제 겨우 한달이 지났는데 매일 한두차례씩 서로 왕래할 정도로 가깝게 지낸다"고 말했다. 영어도 영어지만 이웃간의 정이 돈독해져 너무 좋다고 이구동성이다. 이용희씨(40)는 "저녁마다 책상머리에 앉아 아들과 함께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며 "며칠전에는 지하철에서 늘 만나는 한 외국인 학생에게 다가가 몇마디 말을 건네기까지 했다"고 자랑했다. 수업때마다 이제 막 돌을 넘긴 딸과 함께 오는 주부 윤미라씨(35)는 "아이에게 공부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준다는게 가장 즐겁다"며 "텔레비전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는 엄마에게서 아이가 뭘 배우겠냐"고 말했다. 심지어 최고령인 조정애씨(43)까지도 숙제는 꼬박꼬박 해올 정도. 이들이 영어공부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말부터. 9세때 미국으로 이민가 20여년 그곳에서 살아 영어에 능통한 나씨가 반상회를 통해 영어지도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제안을 하면서 시작됐다. 나씨는 "미국에서 살다보면 영어를 못해 조국의 얼굴에 먹칠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며 "그래서 귀국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모두가 대졸 출신인 이들 주부들이 새삼스럽게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무엇보다 발음 때문. 자녀들이 일상적인 영어단어의 발음을 물어왔을때도 왠지 자신감이 없어 매번 피해다니기 일쑤였다는 것. 이왕에 시작한만큼 부지런히 배워 영어만으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궤도에 오르겠다는게 이들 주부들의 당면 목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