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족] 3박자 매너갖춘 미혼남성
기사입력 1996년 09월 20일 15시 28분
`키 크고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 그리고 뒤 끝이 깨끗한 남자'. `청포도족'이 신세대 젊은이들 사이에 새로운 유행어로 정착하고 있다.
`청포도족'이란 서울 시내 일부 나이트클럽 웨이터들이 잘 생기고 돈 많아 보이는 남자가 부킹을 요청할 경우 여성에게 의사전달 방식으로 `톰슨 시들리스(Thomson Seedless)'라는 청포도를 보내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외모와 재력, 매너의 3박자를 모두 갖춘 미혼 남성을 의미한다.
이들은 돈만 많으면 됐던 `오렌지족'과는 달리 원하는 여성에게 `오렌지' 대신 `청포도'를 전달함으로써 외모와 매너에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음을 과시한다.
`톰슨 시들리스' 청포도가 `외모와 매너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로 탈바꿈하게 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톰슨 시들리스'는 전세계 15만종의 포도 가운데 가장 먹기 쉽고 가장 아름답게 개량됐다는 이유로 `20세기 최후의 과일'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산 포도. 껍질이 얇고 달아 통째로 먹을 수 있으며 `씨'가 없어 먹다가 윽어내는 일이 전혀 없는 게 특징이다.
서울 강남의 R호텔 나이트클럽 웨이터 곽영수씨(29)는 "톰슨 시들리스는 겉모양도 예쁜데다 껍질째 먹어도 뒤끝이 깨끗한 과일"이라며 "청포도족이 외모와 매너를 갖춘 남자를 상징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모와 재력, 그리고 매너를 갖췄다고 해서 곧바로 청포도족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킹 뒤 여자손님과 좋지 못한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애인이 됐다는 소문이 돌면 다시는 청포도족이 될 수 없다는 것.
서울 H호텔 나이트클럽의 웨이터 김선태씨(30)는 "이 바닥에서 구설수에 오르거나 애인이 생겼다는 소문이 돌면 웨이터들에게 당장 따돌림 당한다"며 "그런 경우 매너 좋은 독신남성이 아닌 것으로 보고 절대로 청포도를 배달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즉, 여자손님은 청포도를 믿을 만한 남성을 뜻하는 `보증수표'로 여기기 때문에 청포도 배달요청을 아무에게나 응해주다가는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자칫 웨이터의 신뢰도에까지 치명적인 악영향이 미친다는 것이다.
김씨는 "청포도족은 한 번의 만남에 최선을 다할뿐 절대로 더이상의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며 "그렇지 못한 남자가 청포도 배달을 요청할 경우 정중히 거절해 여자손님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 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