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화] 대륙의 기인들 (25) ♣
기사입력 1996년 09월 09일 15시 32분
"아니다. 난 동방출신이야."
사원의 무심한 어조. 아귀는 고개를 돌려 유유히 말을 몰고 있는 무적도를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빛은 담담했다. 아귀가 물었다.
"이소야도 동방산장의 작은 주인이니 따지고 보면 두 사람은 같은 족속인데 왜 생사의 대결을 벌이려 하지?"
사원은 간략하게 말한다.
"너에게 무적도이든 신검이든 넘겨주고 싶어서."
아귀가 익살맞게 웃었다.
"하하… 어쩌면 두 사람의 대결은 평생 벌어지지 않을지도 몰라. 사실 난 거짓말을 밥먹듯 하고 신의를 지키지 않기로 유명하지. 이소야를 찾을 수 있다는 건 허풍이야."
"넌 내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한 모양이구나."
아귀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좌우지간 심기가 대단하다니까. 그래서 술주정을 핑계삼아 그 여자를 무참히 보내버린거겠지?"
순간 사원의 눈에서 일찍이 보지 못한 차가운 한망이 줄기줄기 쏟아졌다. 아귀는 때마침 사원을 외면하고 앞을 보느라 그 눈빛을 목격하지 못했다.
사원의 살심(殺心)이 맹렬하게 내부로부터 치솟아 올랐다. 바로 목전에 아귀가 있었다. 함께 말을 타고 있기에 그의 목숨은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
이때였다. 어디선가 피리소리가 울려 나왔다. 적막한 계곡에 울리는 적음(笛音)은 신비롭게 퍼져 나갔다. 일심부주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황보백령이 술수를 부리는게 아닐까?"
모용추는 깊은 상념에 빠져 있어서 사형의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은 허공을 선회하고 있는 한 마리의 매를 향하고 있었다.
일심부주가 다시 모용추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황보백령의 피리소리로 미루어 사매로부터 당한 금제가 이제는 효과가 없는 듯 하오. 그녀는 공력을 모조리 회복한 듯 싶소."
그제서야 모용추가 고개를 돌렸다.
"의귀취선의 의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러나 은거한지 오래되어 거의 실종된 그가 다시 출도할 줄은 의외예요."
"아니지. 만일 봉황곡이 열린다는 사실이 강호에 알려지면 관속에 드러누워 무덤안에서 썩고있던 위인들까지도 모조리 뛰쳐나올거야."
"하여간 의귀취선이 청국의 왕녀 아비라와 동행하게 될줄은 정녕 뜻밖이었어요. 더구나 딸과 제자까지 함께."
"제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의귀취선의 제자라면 당연 인피면구를 착용하고 있는 이소야를 가르킴이다. 모용추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글쎄요… 평범해 보였어요."
"난 그게 수상하오."
모용추는 가만히 사형을 올려다 보며 다음말을 기다렸다. 일심부주는 나직한 소리로 설명했다.
"조의귀는 의술뿐만 아니라 인피면구 제작의 기인이지. 어쩌면 그의 제자는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을지도 몰라. 너무 평범한 것이 마음에 걸려. 조의귀가 그런 자를 제자로 삼기에는 어딘가 허술해."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