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비안 나이트]
기사입력 1996년 07월 20일 14시 20분
여러분은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님을 기억하시리라.
공병우 박사는 참 많은 일을 하셨다. `공병수집'까지 하셨다고 그런다.
그 분은 눈을 고치는 의사였을뿐 아니라 한글타자기 발명가에 한글전용 운동을 펴시다가 얼마전 세상을 뜨실 땐 당신의 시신을 의학용으로 기부를 하기도 했다.
그 분이 사신 하나하나의 행동은 우리 모두가 본 받을만 한데 특히 화장실 이용 시 시간을 쪼개 쓰신 이야기는 더욱 더 감명을 준다.
화장실에서 용변 보는 걸 사뭇 즐기셨다는 것인데, 발바닥은 지압 마사지를 했으며 손에는 책을 들고 눈으로 읽고 입으로는 노래연습(큰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와서 노크를 하는 수고를 덜었다지)을 꼭 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개 화장실을 가고 오는 시간을 그저 덤덤하고 무의미하게 보내고 만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화장실서 일보는 것이 어디 예사 작업인가 말이다. 그 일은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끼게 해 주는 실로 중요하기 짝이 없는 행사다.
화장실 문화는 우리에게 이러이러한 감정을 주느니만큼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기쁨: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에로비안 나이트'가 실린 신문이 안에 있다. 당황:아주 바쁘거나 급한데 앞에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갈등:주머니에서 담배가 쏟아지고 말았다. 주울 것인가 말 것인가!
비애:쏟은 힘보다 성과가 미약하다.
배신:늦게 온 사람이 기다리던 쪽의 문이 먼저 열린다.
섭섭:늦게 들어 온 옆칸 사람이 먼저 일을 끝내고 나간다.
당혹:이미 공장은 가동이 시작됐는데 휴지가 없다.
불안:아직 멀었는 데 밖에서 연신 인기척이 난다.
은밀:안에서 돈을 세 보거나 연애편지를 읽는 즐거움을 맛 본다.
답답:아주 좁은 곳이어서 마지막 정리(휴지가 필요한 시기)가 곤란하다. 이기: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건 말건 내 시간을 다 쓴다.
불쾌:옆 칸에서 너무 요란한 소리를 낸다.
송구:물이 적거나 해서 뒤처리가 청결치 못했다.
분주:신문 워크맨 담배 등을 동시에 이용하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