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애욕의 소용돌이(17)
기사입력 1996년 06월 27일 15시 44분
**피냄새는 없고 단기 향기만 … 눈빛. 청마위의 일급 고수 사인(四人)은 순간적으로 오금이 저려옴을 느낀다. 적어도 중원에서 행세하는 무림인이라면 숱한 생사(生死)의 갈림길을 헤쳐 나온 백전노장들이다.
그들은 무수한 시선을 받아왔지만 이처럼 섬뜩한 안광은 처음이었다. 불안감과 불길함이 동시에 뇌리를 스쳐갔다.
이소야의 발이 움직였다.
보법은 동방산장의 절기중 하나인 단군낙수(檀君落水)였다.
취리리… 릿….
고막을 찢어발기는 듯한 음향이 터졌다. 아 홉자에 달하는 묵린향이 무서운 기세로 허공을 덮었다.
귀문절도는 기겁을 하고 만다.
묵린향은 뱀 처럼 사악한 기류를 뿜어내며 사면팔방을 조여 오는 것이 아닌가. 그 속도는 섬광을 방불케 하였다.
놀란 것은 귀문절도만이 아니었다. 맹도유객과 다른 두 명의 고수도 혼비백산(魂飛魄散) 하여 대두도를 한꺼번에 휘둘렀다.
그들 네 명의 고수들이 합세하여 뿜어내는 도기(刀氣)는 산악을 함몰 시킬 수 있을 정도로 흉맹하였다.
우웅 하는 굉음이 족 부락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처절한 마찰음이 폭발을 일으켰다. 비명도 뒤따랐다.
"으-악."
단 한 수였다. 이소야가 사문의 검법을 묵린향으로 대신 전개한 위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귀문절도와 맹도유객은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들의 대두도는 세 토막으로 동강 나 있었고 다른 두 명의 고수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나둥그러졌다.
뼈가 허옇게 드러나 보일 정도로 중상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피냄새는 없었다. 단지 형용할 수 없는 향기만 맴돌고 있을 뿐.
묵린향의 조화였다.
촌의 촌장은 연방 감탄한다.
"과연 신기(神技)요. 나는 오늘에서야 진정한 고수를 목격 하였소. 채찍을 다루는 솜씨로 미루어 묵린향의 주인은 본래부터 그가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무현왕자도 놀란 얼굴이었다.
"과연 다르군. 단지 신검의 명성만으로 그를 평가할뻔 했어."
귀문절도는 얼이 반쯤 나가버린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귀… 하는 누구요? 중원을 종횡한지 20년이 넘어 가지만 아직 귀하같은 인물을 만나본 적이 없소. 부디 견문을 넓혀 주시오."
이소야는 묵린향의 향기를 깊이 들이 마신다.
"나는 그저 이름없는 무사일 뿐이오. 굳이 알고 싶다면 그냥 한 줌의 향기로 남고 싶은 무명인이라고나 할까?"
맹도유객이 코방귀를 날렸다.
"그따위 헛소리는 믿지 않는다."
맹도유객은 재빨리 방위를 밟아 나가며 전신의 공력(功力)을 단전으로 집중 시키고 있었다. 이소야를 단숨에 제압하자는 속셈.
귀문절도도 망설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