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 (41)
기사입력 1996년 05월 03일 15시 26분
목엽은 비틀거리며 그냥 걷는다.
청국의 왕녀는 마지막 경고의 앙칼진 외침을 토해냈다.
"멈춰요! 멈추지 않으면 죽어요. 염정선라도 내 화살을 피하지 못했어요."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염정선라 석부용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리라. 그러나 목엽은 그대로 묵묵히 걸어갔다. 거리는 자꾸만 벌어졌다.
왕녀 아비라의 손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멈추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그녀의 눈에서는 어느새 눈물이 핑 돌고 있었다.
"당신에게 당신의 조국이 있다면 내게는 나의 조국이 있어요."
핑!
예궁이 발사됐다.
화살은 정확하게 표적을 향해 날았다.
순간, 멀어져 가던 목엽의 신형이 훌쩍 떠올랐다가 그대로 곤두박질 치는 광경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화살은 목엽의 등판에 여지없이 명중된 모양이었다.
"그러게 멈추라고 했잖아요…."
청국의 아비라는 넋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극히 짧은 순간의 만남이었지만 목엽에 대한 인상이 남달랐던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부들부들 떨고있는 목엽.
아비라는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목엽에게 박혀 있는 화살을 뽑기 위해 몸을 구부렸다.
그 순간 아비라는 무엇인가 잘못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살은 목엽의 등이 아니라 겨드랑이 사이를 파고 들어가 있지 않은가.
정확히 말한다면 목엽의 겉옷만 꿰뚫고 겨드랑이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
"아…?"
아비라가 놀라는 순간 목엽의 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뒤집어지며 부챗살 마냥 펼쳐진 손가락이 마혈(痲穴)을 짚어왔다.
실로 눈깜짝할 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비라는 미처 손 쓸 틈도 없이 당하고 만 것이다.
목엽이 푸득거리며 웃었다.
"미안하오."
그의 눈빛이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목엽은 위기의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속임수를 사용한 것이었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무림인으로서 부끄러운 짓이었지만 지금의 그로서는 다른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아비라는 원망하지 않는다.
"나 또한 등을 보인 사람에게 살수를 가했으니 옳다고 할 수 없어요. 전혀 부담가질 필요는 없죠."
이들은 과연 죽고 죽이고자 했던 적이었을까?
"말과 활은 내가 가지고 가도록 하리다. 당신은 한 시간 쯤 지나면 저절로 혈도가 풀릴 것이오."
목엽이 장내를 떠난 직후 어디선가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