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운명(運命)의 장(章) (5)
기사입력 1996년 03월 26일 17시 37분
"신검은 없소."
사원의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넌 상대가 누구든지 다 기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오. 당신을 속인다는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아오. 왜냐면
당신 같은 성격의 사람은 언제나 그 대상이 누구이든간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칼을 잡기 때문이오. 일단 칼을
사용하면 실수 또한 언제나 없소. 그러니 감히 속일 수는 없는거요."
장황하게 설명하는 아귀.
사원은 잠시 혼란이 왔다. 아귀가 이효봉으로부터 신검을 회수하는 걸 분명히 목격했었다.
그런데 그는 소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된 영문인가?
이때 목엽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재촉한다.
"귀하는 어서 출수 하시오. 난 신검을 필요로 하지 않소."
사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무적도의 손잡이를 놓았다.
그리고는 잡목 옆으로 다가가서 옆의 나뭇가지 하나늘 꺽어 들고 들어와서 목엽과 마주섰다.
"시작합시다."
사원은 정정당당한 승부를 위하여 목엽과 똑같은 조건으로 대결을 하려는 것이다.
과연 사나이다운 기개와 풍모가 아닌가.
목엽은 여전히 놀라는 기색도 감동의 표정도 없었다.
그는 홀연 나뭇가지를 공중으로 치켜들며 천(天)과 지(地)의 기수식을 취했다.
사원도 이제 검이 된 나뭇가지를 비스듬히 세워서 공수 양면의 장세를 취하며 목엽과 대처했다.
장내는 숨막히는 긴장감이 고조 되었다.
비록 나뭇가지라고 하지만 일류고수가 그것을 사용할 때는 능히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
두 사람은 하찮은 나뭇가지로도 얼마든지 상대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 살초를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아귀도 더욱 긴장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한채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드디어 천하제일고수가 결정될 순간이구나!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불그레하게 물든 황혼 아래 두 사람은 나뭇가지를 들고 대치한 채 오랫동안이나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석상처럼 추호의 움직임도 자연 속에 하나로 합치된 정물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 고요한 대치 속에서도 기류를 팽팽히 당기는 듯 숨막히는 긴장감을 일종의 살기처럼
장내를 뒤덮고 있었다.
아귀는 손에 땀을 쥔 채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정말로 바지에 오줌 쌀 것 같은 순간이다!’
이때 사원의 목검이 바람을 탄 듯 미미하게 떨리고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파란 뇌전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신형은 한 마리의 비조처럼 허공으로 도약하며 목엽에게로 덮쳐 가며 대기를 쩌렁 울리는 일갈을
터뜨렸다.
"차아!"
그것은 바로 공격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