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사랑과 죽음의 대륙-중원(中原)(42)
기사입력 1996년 03월 21일 16시 37분
양문우는 보았다.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여인의 품안에서 울고 있는 딸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소중한 아이.
"영…영?"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으앙."
양문우는 그 순간 앞으로 풀썩 꺼꾸러 졌다. 그의 등이 석양으로 말미암아 붉게 물들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건 핏물이었다.
지금 그의 등에는 두 자루의 비수가 손잡이만 남겨두고 깊숙히 박혀 있었다. 피는 그곳으로부터 번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양문우는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지하석실의 계단을 미끄러져 들어갔다. 움직일 때 마다 무서운 고통이 엄습 하는지 그는 인상을 찡그렸고 그때마다 신음이 입술을 찢었다.
하지만 오직 자식을 만나보겠다는 일념이 그로 하여금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모양이었다.
부정(父情)은 아름다웠고 또 슬펐다.
아무도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영영의 울음소리만이 석실의 정적을 깨뜨리고 있을 뿐이었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잔인하며 또 어디까지 자비로운 것인가.
양문우가 기어내려와 계단의 끝에 도달 했을 무렵 입구에는 세 명의 흑의경장녀들이 유령 처럼 미끄러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들의 몸놀림은 매우 경쾌했으며 일정한 보폭을 유지하는 것으로 미루어 고도의 수련을 쌓은 무사들로 보였다.
얼굴에 검은 먹칠을 하고 있는 경장여인이 고개를 숙였다.
"황금사원의 인물들은 모두 제거 되었습니다. 이제 아가씨의 지시대로 양총표두를 모셔 왔나이다."
낙양표국의 총표두 양문우를 바라보는 모용추.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추호의 감정도 배어 있지 않았다.
"영영아, 너를 위한 마지막 배려이니라. 부친에게 작별을 고하거라."
모용추는 안고 있는 영영을 양문우에게 비스듬히 내민다.
양문우는 이미 죽음에 임박하고 있었으나 사력을 다하여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에서도 핏물은 흐르고 있었다.
영영은 그 부친의 붉은 손을 바라보며 계속 울어댔다. 어린 그녀에게는 오로지 공포심만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영…영아…."
양문우의 손이 마구 허공에서 떨었다. 영영은 두려운 듯 고개를 돌려 모용추의 가슴을 파고 들었다.
영영을 끌어안는 모용추의 입가에는 갑자기 한월 같이 차가운 미소 한 줄기가 스쳐갔다. 마침내 양문우의 손이 떨궈지고 헐떡이던 숨이 끊어졌다.
낙양표국은 이제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