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엘리트산실 해만지면 '무의촌'
기사입력 1996년 03월 20일 15시 16분
**오전9시에 문열고 오후6시 '땡'하면 퇴근하는 '관공서'
**집단간염발병등 구설수에도 예산타령…대책 실종지대
정세훈의 죽음이 있은 그 다음날인 20일 오전 8시30분.
태릉선수촌내 의료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시간이면 모든 선수들이 잠에서 깨어 아침식사를 마칠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선수촌 병원은 개점휴업상태.
이것이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요람이라는 태릉선수촌의 현실이다.
이뿐 아니다.
선수들이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선수촌내의 병원은 관공서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면 영업(?)이 끝난다.
해만 지면 무의촌(無醫村)으로 변하는 곳이 바로 이곳.
지난해까지만 해도 간호사 2명이 서로 교대해 가며 밤늦도록 의료실을 지켰지만 정세훈이 쓰러졌을 때는 그마저도 없었다.
그동안 태릉선수촌은 끊임없는 선수들의 발병으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지난 81년 입촌 선수 30여명이 집단으로 간염 판정을 받은데 이어 지난 92년 40여명의 선수들이 영문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간염선고를 받고는 퇴촌을 당했었다.
그나마 94년 송성일의 위암 발병이 소문나면서 선수촌은 지난 3월 지금까지 공중보건의가 지키던 의료실에 3년 계약으로 전문의를 배치했고 입촌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정기검진을 실시했다.
또 새로 입촌하는 선수들에게는 건강진단서를 필수로 지참하게 했다.
선수촌 관계자들은 "의료실을 보강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 어쩔 수 없다"며 짜증을 내고 있다.
또 선수촌 내에서 다치는 것은 책임을 지겠지만 선수가 훈련과 관계없이 병에 걸리는 것은 선수촌 소관이 아니라는 면책론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최고 스포츠 엘리트들이 400~600명씩이나 상주하는 태릉 선수촌에 위급시 의료시설이나 인력이 태부족이란건 세계 스포츠의 `빅7'이라고 떠들고 있는 한국체육의 허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