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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2017년 초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 공항에 처음 내렸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 낯선 풍경, 시끌벅적 무질서한 공항이 첫인상이었다. 빨리 입국 절차를 마치려고 덩치 큰 흑인들이 사방에서 서로 밀어댔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고 유약해 보이는 아시아 여자인 나는 자꾸 밀려나는 것 같아 두려워졌다. 이 낯선 곳에서 얼른 무사하게 빠져나가 마중 나온 동료를 우선 만나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발동했다. 나도 더 거칠게 어깨를 밀쳐대며 공항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그때부터 탄자니아 3년을 비롯해 덜 개발된 아프리카 국가들을 주재원으로, 출장으로, 여행으로 다녔다. 마찬가지로 무수한 무례와 무개념하고 그릇된 행동들을 저지르면서도 '생존본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시키며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그 당시에는 그래야 낯설고 거친 환경에서 살아낼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현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행동들로 조금은 얼굴이 화끈거린다.
현지인 운전기사는 종종 도로에서 경찰 검문에 잡혀 '운전면허증, 자동차등록증 등을 보여 달라, 타이어가 낡았다, 창문이 잘 안 내려간다'는 둥 터무니없는 시비를 당했다. 종종 '배고프다, 목마르다, 음식값이나 음료값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찰도 있었다. 기사는 뒷좌석에 앉은 내가 '돈 있는 중국인처럼 보여서 그런 것일 뿐이다, 별일 없다,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검문에 걸리면 부패 경찰이라고 넘겨짚고 일단 핏대부터 올리고 봤다.
현지 경찰은 땀 흡수가 전혀 안 될 것 같은 제복을 입고 종일 뙤약볕으로 달궈진 도로 위에서 일하는 극한 직업이다. 나중에 이들의 월급이 실제로 몇 개월씩 안 나오거나 늦게 나와 점심값이나 음료값이 필요하다는 게 100% 과장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야 나도 그 나라에서 태어나 경찰이 되었다면 똑같이 돈 있어 보이는 외국인 차량을 잡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그 후에는 화가 덜 났다. 대신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연출하며 "미안하다, 돈이 없다"라고 눙치면서 상황을 벗어나곤 했다.
내가 사는 외국인 아파트 단지는 24시간 경비 순찰이 있어 안전한 곳이었다. 저녁을 소화 시킬 겸 단지 산책하러 나가면 어떤 경비는 나를 기다렸던 듯, 어두운 길모퉁이에서 불쑥 나타났다. 이어 보조를 맞춰 걸으며 "안녕하세요, 별일 없죠?"라고 말을 건넨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더 이상 말 걸지 않도록 "네!"라고 짧게 대답하고 걸음을 재촉해 그와 간격을 벌리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눈치도 없이 굳이 옆으로 따라붙는다.
짐작대로 그는 "난 먼 지방 출신이에요. 고향에 있는 내 형제가 아픈데 치료비가 없어요. 돈 좀 빌려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그 경비가 내게 해코지 안 하도록 완곡하게 빌려줄 돈이 없다는 구실을 어떻게 댈 것인지 잠시 고민한다. 그들이 도저히 꿈꿀 수도 없는 아파트에서 풍요롭게 사는 것을 지켜 본 경비는 내가 푼돈으로 자기들을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나는 그와 가까워져 난처한 상황에 빠질까 두려워 거리를 두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시골에서 전통 농경 사회적인 가치와 관계를 중시했던 우리 큰집의 9남매 사촌들도 가끔 '집을 대수선 해야 한다, 암 수술을 해야 한다'며 내게 전화하곤 했다. 특별히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내 살림이 상대적으로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사촌들은 상호부조를 내심 기대했을 것이다. 우리도 그랬다. 지금은 어린 자녀한테 용돈을 주고 나면 그 용돈을 어디에 쓰더라도 부모조차 간섭할 수 없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내 어릴 적에는 부모, 형제, 사촌이 어려울 때 사정이 나은 혈육이 부조해야 하고, 모른 체 한다면 '경우가 없다'는 주변의 비판적인 시선을 견뎌야 했다.
새로운 것을 인지하는 능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일반적으로 좌뇌가 발달한 사람은 '장 독립적'(field independent)이어서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개체들이 있는 '장'(field)에서 필요한 개체나 요인만을 찾아내 식별·집중하고, 다른 주변 요인들에 의해 혼동됨이 없이 각 요인을 구분하여 분석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미시적인 접근에 강하다.
그와 반대로 우뇌가 발달한 사람은 '장 의존적'(field dependent)이어서 전체 장에 '의존하는' 성향에 따라 통합된 하나로 좀 더 명확하게 감지하면서 장속의 부분들을 쉽게 감지하지 못한다고 한다. 즉, 거시적인 접근에 강하다. 장 독립적인 사람은 필요한 자료만을 찾아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장 의존적인 사람은 부분을 놓치는 경향이 있지만 전체 그림을 보거나, 어떤 문제·아이디어·사건의 전반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장점이 있다. 문화적으로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자라는 경우, 권위적이거나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는 좀 더 장 의존적인 성향이 개발된다.이에 비해 자유로운 규범을 따르는 민주적이고 산업화한 경쟁 사회에서는 좀 더 장 독립적인 성향이 개발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청년 세대는 장 독립적, 노년 세대는 장 의존적인 인지 경향이 각각 강하다고 한다. 그런데 처한 환경에 따라 '좌뇌형' 대(對) '우뇌형', '장 독립적' 대 '장 의존적', 본인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도 달라진다.
나는 한국에서는 전반적으로 우뇌형에 가까웠다. 우뇌형으로 회사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잘 골라내서 분석 보고서를 만드는 사람들을 보며, 한때 내 보고서는 왜 그들의 보고서만큼 분석적이지 못하고, 부분을 놓치는지에 대해 부족함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탄자니아, 가나, 이집트에 근무하는 동안은 상대적으로, 그리고 전반적으로 좌뇌형에 가까웠다. 현지인들이 부분을 간과하고, 심도 있게 분석하지 않으면서 큰 그림만 관심을 두는데 답답함을 느꼈다.
나는 시간이 지연된 것, 계획대로 차근차근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과도하게 조바심을 냈다. 어떤 원인이고 누구의 책임인지 밝히며 닥달을 했다. 반면에 현지인들은 일이 잘 안 풀려도 느긋해하고, 결과에 큰 영향이 있는지에 더 관심을 두곤 했다. 상대편에 대한 무례한 닥달보다는 인간적인 배려를 앞세우곤 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 속한 환경에서 내가 어느 쪽에 가까운지 인지를 하는 게 중요한데, 그 당시 나는 제대로 된 인식 없이 내 잣대로만 자주 현지인들의 언행과 대응방식 등을 재단하고 폄훼했었다. 그러면서 현지인들을 대하는 내 무례한 태도를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시켰다.
여러 아프리카 나라를 다니며 전반적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장 의존적'인 성향이 강한 것을 경험하고 깨닫는다. 상대적으로 부유해 보이는 내게 배고픈 것을 좀 해결해 달라는 경찰이나 아픈 형제의 치료를 좀 도와달라는 경비의 요구를 보면 그렇다. 매우 '장 독립적' 성향이 강한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라면 어처구니없는 요구일 수 있다. 하지만 '장 의존적' 성향이 강한 아프리카의 '우분투'(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공유·공동체 정신)에 따르면 이해가 된다.
그런데 머릿속으로 이해는 되더라도 좀더 깊이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아프리카에서 5년 동안 만난 사람들의 역할이 컸다. 몰이해로 인한 짜증을 불러일으킨 사람은 현지인들이었다. 하지만 나를 돌아보고 자각토록 도와준 것도 역시 현지인들이었다. 그들은 오만하고 무례했을 수도 있는 내 의견과 태도를 존중해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성의 있게 소통해 줬다. 현지인들과 의견 충돌-갈등-해결-이해의 과정을 겪으면서 나의 무지와 오만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감화받기도 했다. 현지 사람들은 살아오는 과정에서 지식·경험·태도·고난 극복 등 많은 것이 농축된 성숙한 인격을 갖고 있었다. 이들을 만나면서 그 사회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신뢰를 키울 수 있었다.
공감이나 이해가 없으면 오해가 쌓인다. 오해가 쌓이면 '나와 다른 너'로 타자화하게 된다. 상대방이 왜 이상하게 말하거나 행동할까. 내가 가진 필터 안에서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을 이해하려면 내 렌즈가 더 커야 하고, 필터를 여러 개 바꿔가며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봐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공감이나 이해가 시작된다.
한국의 교육·체계·질서·자유·민주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며 몸에 스며든 '장 독립성'이 강한 기준·가치로 볼 때 '우분투'의 '장 의존성'이 강한 아프리카 현지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 말이 낯설 수 있다. 그러나 우리도 한때 '우분투'와 유사한 정신이 지배했던 사회였다. 우리도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면 그와 비슷한 정신이 체화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먼 나라들로서 다양한 색채의 54개국이 존재하는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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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정 소장
현 한국수출입은행 EDCF(대외경제협력기금) 이집트 카이로 사무소장,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서울대 글로벌 MBA, 세종대 국제개발협력학 석사, EDCF 탄자니아 사무소장(2017), 경협사업1부 팀장(2020), EDCF 아프리카부장(2021), EDCF 가나 사무소장(2022) 역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