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샷!] "억장이 무너진다"…숭례문 트라우마 고개

기사입력 2025-03-28 08:20

[연합뉴스 자료사진]
(의성=연합뉴스) 백승렬 기자 = 연합뉴스가 지난달 11일 취재한 경북 의성군 단촌면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가운루 마지막 모습. 고운사는 지난 25일 의성 지역의 대형 산불로 전각들이 전소됐다, 2025.3.28 srbaek@yna.co.kr
(의성=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지난 26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 범종이 불에 타 깨져 있다. 이번 화재로 국가 지정 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고운사 가운루와 연수전 등이 소실됐다. 2025.3.28 superdoo82@yna.co.kr
(의성=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경북 의성군 대형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 23일 의성군 안평면 신안리 운람사와 인근 산림이 산불에 폐허가 된 가운데 소방대원이 잔불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2025.3.28 psik@yna.co.kr
(안동=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지난 26일 오전 경북 안동시 길안면 만휴정에 방염포가 덮여 있다. 만휴정은 방염포 덕분에 다행히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도 유명한 이곳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돼 있다. 2025.3.28 handbrother@yna.co.kr
(서울=연합뉴스) 지난 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주변 산들이 불타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자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유서 깊은 사찰인 의성 고운사는 산불에 완전히 소실됐다. 2025.3.28 [경북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산불에 고운사·운람사 소실…하회마을·병산서원 위기

"17년 전 숭례문 불타던 장면 생각나 마음이 너무 아파"

"방화선 구축이 가장 중요…방화수 등 구조적 대비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승연 기자 김유진 인턴기자 오인균 인턴기자 = '숭례문 불탈 때도 울었는데 의성 고운사 사진 보니까 또 눈물이 쏟아졌다."(네이버 아이디 mango16)

"하회마을에 불이 근접했다는 소식에 다들 제2의 숭례문 사태 나는 거 아니냐고들 한다. 그때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는데…"(40대 안모씨)

사상 최악의 산불로 인명·재산 피해가 확산하는 가운데 천년 역사를 간직한 국가문화유산까지 화마가 덮치자 '숭례문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슬픔을 표하는 이들이 많다.

국가유산청은 27일 오전 11시 기준 국가유산 총 18건이 산불 피해를 봤다고 밝혔다. 

경북 의성군에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가 소실됐고, 비지정 문화재 운람사는 전소됐다.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청송 송소 고택, 서벽고택 일부가 불탔고 사남고택은 잿더미가 됐다. 또 안동 용담사 곳곳이 불탔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의성 관덕동 석조보살좌상'이 전소됐다.

28일 현재 여전히 산불이 진화되지 않은 가운데 시민들은 2008년 숭례문 방화, 2005년 낙산사 산불 소실을 언급하며 속수무책으로 문화유산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에 참담함을 토로하고 있다.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산불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조상들이 물려준 귀한 문화재를 잃어도 되냐'는 반응들이다.

특히 17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대한민국 국보 1호가 방화로 무참히 불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트라우마가 되살아난다며 괴로워했다.

직장인 김모(30) 씨는 "어린 시절 TV를 통해 숭례문이 불타던 모습을 본 게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옆에서 어머니가 펑펑 울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며 "정부가 그간 화재에 대비해 어떤 준비와 훈련을 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50대 조모 씨는 "숭례문, 낙산사에 이어 하회마을인가 싶어서 진짜 심란했다"고 토로했다.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ank***'는 "얼른 불길이 멈췄으면 좋겠다. 숭례문 불타던 장면이 생각나서 맘이 너무 아프다"고 적었고, 네이버 카페 이용자 '뾰**'는 "산불 아직도 진행 중이네요. 숭례문 때처럼 마음이 굉장히 안 좋고 먹먹하다"고 썼다.

정부는 숭례문 방화가 일어났던 2월 10일을 '국가유산 방재의 날'로 지정해 매년 방재대응 상황을 점검해왔다. 올해도 이에 맞춰 지난달 재난 대응 훈련을 했지만 거대한 산불에 많은 문화유산이 스러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산불로 국가유산 재난 위기경보 수준을 사상 처음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엑스 이용자 'kry***'는 "우리나라 건축 문화재는 대부분 목조 기와 주택인데 정부가 문화재 관리에 너무 소홀한 것 같아 답답하다. 이 작은 나라에 몇개가 있다고 화재 대비를 이렇게나 안 했을까 싶다"고 적었다.

이번 산불로 고운사는 전체 건물 30동 중 21동이 불탔으며, 보물 연수전과 가운루 등도 포함됐다. 피해 소식에 신도들은 현장을 찾아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부산의 직장인 하예은(26) 씨는 "(고운사) 잿더미 속에서도 타지 않은 종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고 말했다.

엑스 이용자 'hi***'는 "1천300년 세월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 너무 열받고 눈물이 난다"고 적었고, 또 다른 이용자 'app***'는 "고운사는 가본 사람은 한 번 더 가게 되는 아름다운 천년고찰로, 이번 산불의 가장 큰 문화적 손실"이라고 썼다.

또 운람사에 추억이 있다는 엑스 이용자 'Min***'는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매년 가시던 곳인데 너무 마음이 아프실 것 같다"며 "나도 어릴 때 매년 가서 스님께 땅콩 캐러멜 받고 절밥 먹고 왔던 곳인데"라고 적었다.

유교 문화 정신이 깃든 안동 하회마을, 병산서원도 연기로 뒤덮였다. 소방당국과 마을주민들은 마을 내 가옥에 물을 뿌리는 등 산불 피해를 볼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안동 출신 대학생 노모(25) 씨는 "현재 발령된 국가유산 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는 숭례문 화재 때도 뜨지 않았던 경보"라면서 "고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비가 내려주길 바라는 방법밖에 없다는 게 말문이 막히고 참담하다"고 말했다.

5년 전 하회마을을 방문했다는 직장인 황모(32) 씨는 "하회마을은 한국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정취와 옛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며 "불타버릴 경우 복원하더라도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두렵다"고 걱정했다.

퇴계 이황의 사상과 학문을 기리는 도산서원도 위태롭다. 당국은 불길이 서원까지 퍼질 것을 우려해 퇴계 이황 유품과 서책 등을 옮겨놓고, 방어선 구축을 위해 인근의 나무를 벌목하는 등 사전 작업을 해놓은 상태다.

한국철학을 전공한 직장인 조모(32) 씨는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한국철학의 기틀을 세운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선생이 모셔진 곳"이라며 "두 서원이 소실된다면 단순히 건물을 다시 세우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정신문화의 기틀을 잃는 것이라 생각한다. 뉴스를 볼 때마다 조마조마한데 빨리 불길이 잡혔으면 한다"고 기원했다.

이런 가운데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 유명한 안동 만휴정은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겼다. 한때 산불에 전소된 것으로 알려졌던 만휴정은 불길이 번지기 직전 덮어둔 방염포 덕분에 큰 피해를 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3년 전 만휴정을 방문했다는 김점숙(61) 씨는 "'미스터 선샤인'을 재밌게 봤던 터라 소실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만휴정은 주변의 나무와 돌, 물이 하나같이 어우러져 그 경관을 완성한다고 느꼈는데, 그 주변 숲이 소실됐다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진다"고 슬퍼했다.

네이버 이용자 'ryu***'는 "화마 속에서도 자리를 지킨 문화재가 대견하고 산불 진압하고 문화재 지키느라 노력하는 소방관에게 감사하다"고 했고, 'goo***'는 "만휴정에 개인적으로 인연이 많은 터라 심란했는데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이다"라고 적었다.

전문가들은 산불에 대한 문화재 방재 연구가 지진, 홍수 등에 비해 부족하다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함은구 을지대 바이오공학부 안전공학전공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방화선 구축"이라며 "사찰 뒤편이 대부분 산과 면하고 있는 만큼 방화수를 놓는 등 구조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함 교수는 "우리나라 문화재는 대부분 목조이고 산속에 있다 보니 수막 설비를 구축하기 위한 수원 확보, 충분한 저수 공간 확보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문화재에 대한 산불 방재 연구는 지진, 홍수 등에 비해 부족하기도 하다"며 "그간 비용 등을 핑계로 간과해왔으나 이제는 더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과거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안전방재연구실장으로 재직한 한 인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산불 양상은 과거의 대응 방식으로 대처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60년대만 해도 화전민이 있어서 국소적으로 산을 태워놔 산불이 크게 번지지 않았으나 더이상은 땔감을 쓰지 않아 수목 밀도가 높아졌다"며 "작은 불이 크게 확산할 요인이 너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는 단편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산림청을 비롯해 관련 부처가 함께 국토 전체에 대한 계획을 종합적으로 수립해야 한다"며 "심지어 산불에 대한 문화재 방재 연구는 지진, 홍수에 비해 미비한 편인 만큼 중장기적 연구를 통해 종합적인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inkite@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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