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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공정위 조사전 자료삭제·하도급 갑질 의혹…경영 개선 발목?

장종호 기자

기사입력 2018-10-24 08:06


계속되는 조선업 불황으로 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설상가상으로 최근 연이은 악재까지 겹치면서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

하청업체를 상대로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고 기술 유용을 하는 등 하도급 '갑질'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관련 파일을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것.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공정위 조사 방해 혐의로 법적·도덕적 책임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측은 "(파일 삭제 등은) 기밀 유출 방지 목적으로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해당 의혹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다.

하도급 대금 부당 지급·기술 유용 의혹…현대중, "공정위 조사에서 밝혀질 것"

23일 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하도급 갑질' 혐의로 공정위의 조사를 받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1일 울산시 동구 현대중공업 본사에 조사관을 파견해 전격 직권조사에 착수했다. 공정위는 다수의 1, 2차 하도급 업체를 상대로 부당하게 하도급 대금을 결정하고 서면 미발부 및 기술유용을 하는 등 하도급법을 위반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경기가 침체된 2015년부터 하도급업체들에게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24년간 선박용 배전반을 납품해 온 동영코엘스는 2015년 3월 예상가격보다 300억원 가까이 낮은 528억원에 계약했고, 이후 발주금액이 줄어 결국 이듬해 8월30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또 다른 협력업체인 삼영기계는 현대중공업이 정당한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피스톤과 실린더 헤드 등 주요생산품 제조공정도를 요구했으며 해당 자료들을 다른 업체에 불법유용해 생산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와 계약을 하면서 계약에 필요한 기본적인 정보인 단가 책정 기준도 제공하지 않아, 제대로 된 견적서조차 제출할 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추혜선 의원(정의당)은 지난 15일 공정위 국정감사에서 "현대중공업과 경부산업이라는 하청업체 간의 견적서를 보면 물량과 금액만 있고 단가는 표시되어 있지 않다"며, "단가를 알려면 원단위율(품셈)을 알아야 하는데, 현대중공업은 이를 기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은 하청업체인 경부산업으로부터 제공받은 개별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예로 들었다. 이 계약서에는 경부산업이 배에 전선 설치 작업을 했던 물량과 이에 대해 지급받은 금액이 적혀 있다. 이를 토대로 전선의 길이에 따른 단가를 계산해 보니 m당 최저 1330원에서 최고 360만원까지 무려 2700배나 차이가 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공정위 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이어서 자세한 언급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부의 경우 법원의 판단을 받았거나 진행중인 사항"이라며 "공정위 조사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조사전 관련 자료 삭제?…현대중공업 "사실 무근"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이 공정위 조사를 대비해 '블랙매직' 등 프로그램으로 관련 메일과 파일 등 증거를 인멸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블랙매직 프로그램은 저장매체의 데이터를 영구 삭제하고 복구를 불가능하게 해 정보의 외부 유출을 사전에 차단하는 소프트웨어다.

김종훈 의원(민중당)은 최근 입수한 하청업체 직원 A씨와 다른 협력사 관리자 B씨간 통화녹취 파일에서 증거인멸 뿐만 아니라 견적서 등을 조작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협력업체 관리자는 통화에서 "메일 같은 거 파일 같은 거 직영에서 깔아주거든"이라며 "블랙매직 돌렸다는 건 아는데 뭘 삭제한지는 몰라"라고 전했다. 이어 "공정위 때문에 특수선(쪽 협력업체)에 (블랙매직을) 돌렸냐"는 질문에 "다 돌렸다"며 "메일은 자체적으로 지운 거고, 파일 같은 거 보관하다가 안 되는 그런 거 (다 지웠다)"고 통화했다.

현대중공업이 한 달 전인 협력업체의 청와대 청원 직후부터 준비해온 정황도 확인됐다. 해당 협력업체 관리자는 "위에서 지침을 8월 달부터 맞춰라 이렇게 내려왔대"라며 "공정위에서 나온다고 한 때가 한 달이 다돼 가는데 그 안에 물밑작업 이미 다 했지"라고 구체적으로 구술했다.

현대중공업 특정부서에서 직접 점검한 정황도 확인됐다. 협력업체 관리자는 "이거 담당자가 지운 게 아니라 무슨 과더라 중공업에 무슨 그거 있잖아?"라며 되묻고 "정보운영과?"라고 통화당사자가 답하자 "응 뭐 그런 과에서 나와서 직영 PC 다 봤다. 삭제할 거 다 삭제하고"라고 답했다. 블랙매직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마우스를) 우클릭해서 삭제해도 우리는 안 보이는데, 이거 하면 파일을 완전 다 삭제한 게 아니더라고"라며 "그러니깐 그런거 가지고 와서 그런 걸 블랙매직 갖고 싹 다 지워버리는 거라"고 설명했다.

또한 현대중공업이 견적서 등의 조작도 지시한 정황도 있었다고 김 의원은 지적했다. 녹취에는 "공정위 때문에 견적서 같은 경우 다 맞춘거예요?"란 질의에 "우리만 아니고 전부 다 맞췄다. 없는 거는 간이견적서 해가지고 다 맞추고, 우리 정식 말고 그걸로 다 맞추고"라고 답했다.

해당 녹취는 공정위가 현대중공업을 조사 중에서 밝혀져 파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의혹에 현대중공업측은 "블랙매직 프로그램은 공정위 조사와는 무관하다"며 강력 부인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함정, 잠수함 등을 건조하는 특수선 사업본부에서만 군사 기밀 보안을 위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라며 "기밀 자료를 삭제했을 뿐이지 증거 인멸과는 관계없다"고 전했다. 이어 "공정위 조사 결과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확인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올 2분기 매출 3조1244억원, 영업적자 1757억원으로 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경영난으로 인한 구조조정 등 산적한 과제들이 있는 상황에서 연이은 악재가 터지며 당혹스런 분위기다. 특히 당국과 정치권의 도마에 오르면서 자칫 경영 개선에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감도 나오고 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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